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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날이었어

글제: 시작

by 김미희건이나비

그때였다. 시꺼멓던 딸아이의 등이 서서히 옅은 보라색으로 변해 가며 통증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물건이 뭐지?’ 그 순간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계단에서 구른 멍이 이렇게 빠르게 가라앉는 모습을 보니 경이로울 정도였다.

지인에게 천연 아로마오일을 소개받고 내가 처음 한 일은 통증오일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허리가 자주 아프니 만들어두고 아픈 곳에 발라보라고 했다. 처음엔 시키는 대로만 했고, 큰 기대 없이 통증오일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된 통증이라 그런지 내게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아이의 등에 난 멍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 그리고 통증이 거의 없다는 말에 더 놀랐다. 작은 손가락에 난 상처도 쓰릴 텐데, 통증이 사라진다니 신기했다. 나의 오일 사랑은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그즈음 유튜브를 배우고 있었는데, 과제로 영상을 올리라고 해서 오일을 배우면 그날로 바로 촬영해 올리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잘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다가 내 채널이 너무 허술해 보였고, 결국 업로드를 멈추었다.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기면 병원보다 먼저 오일을 떠올리게 되는 습관은 남았다. 오일로 해볼 수 있는지 먼저 살피고, 그래도 안 되면 병원을 찾았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건강한 날이 많지 않았다. 중풍, 치매, 폐 질환, 심장마비까지….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땐 이미 나도 세 번의 수술을 겪은 뒤였다.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내 몸을 더 돌보고, 나처럼 힘든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명이 생겼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사람들은 잘 안 쓰지?’ 살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오일이 좋다는 건 알아도 쓰는 법을 몰라 못 쓰고, 조금만 나아지면 꾸준히 쓰지 않는 것. 결국 습관의 문제였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병원 가기가 힘들고 의료비가 비싸 오일이 대체의학으로 많이 쓰인다. 특히 미국은 오일을 사용하는 가정의 의료비 지출이 그렇지 않은 집보다 1/5이라는 통계도 있다. 두 딸이 미국과 독일에 있다 보니 병원비가 얼마나 비싸고, 진료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래서 한국 오면 오일을 한 바구니씩 챙겨간다. 정형외과적인 통증이거나 심하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보고 오일을 쓴다. 예전엔 나에게 물어보던 것들도 요즘은 챗GPT에 물어본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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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은 식물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그들은 움직일 수 없으니 외부 환경에 스스로 대응해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낸 생명력 덩어리가 바로 오일이다. 신기하게도 뿌리, 줄기, 잎, 꽃, 열매 등 어디에서 추출되느냐에 따라 효능이 다르다.


뿌리에서 나오는 생강오일은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식물의 뿌리는 모든 것을 결정하니 우리 몸의 ‘중추’ 역할을 하는 뇌에도 도움이 된다. 줄기에서 나온 오일은 수분이 많아 피부에 좋고, 열매 오일은 소화와 배출을 돕는다. 나무가 우리 먹으라고 열매를 만드는 건 아닐 텐데, 동물들이 먹고 멀리 가서 배출함으로써 종을 퍼뜨리는 소망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예쁜 색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 아닐까. 꽃에서 추출된 오일은 수분을 돕듯 생식기나 피부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사람들이 왜 장미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파고들수록 신기하다. 오일은 몸뿐 아니라 마음과 감정까지 아우른다. 홍삼을 아무리 먹어도 우울한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하지만 오일은 몸에도 좋고 기분도 밝아지고, 감정이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향기는 코를 통해 바로 뇌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코는 ‘열린 문’이다. 닫고 싶어도 닫을 수 없다. 어떤 향이든 의도와 상관없이 들어와 기억을 건드리고 호르몬을 조절한다. 그래서 인공향이 뇌를 얼마나 교란하느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좋아하는 향기를 맡고, 가슴에 오일을 바른다. 밤새 디퓨저에서는 숲 속 향기가 은은히 흐르고, 따뜻한 물에 레몬 한 방울을 떨어뜨려 마시면 몸이 레몬 향으로 깨어난다.

그렇게 향기와 함께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감기가 오거나 소화가 안 되어도 걱정되지 않는다.

제2의 인생에서 만난 땅의 선물, 오일이 내 후반기를 향기로 채워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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