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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y 08. 2020

6. 감정 쿠폰을 서로 교환한다.

지금 당신의 부부에게 쌓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관계에서는 감정이 쿠폰처럼 자동으로 발행된다. 심리학자 에릭 번은 이 감정들에 ‘골드 쿠폰’과 ‘그레이 쿠폰’이라고 이름 붙였다. 관계에서 서로 좋은(플러스) 감정을 느낄 때는 골드 쿠폰이, 나쁜(마이너스) 감정을 느낄 때는 그레이 쿠폰이 쌓인다. 좋은 감정이 쌓일 때는 좋은 마음으로 보답하고 싶지만, 나쁜 감정이 쌓이면 마음에 원한이 생겨난다. 특정 시점이 지나면 적립된 쿠폰이 발급되듯 감정을 청산하는데, 얼마나 쌓이면 청산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쿠폰이 서너 장만 모여도 폭발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40~50장이 모일 때까지 꾹 참고 사는 사람도 있다. 청산하는 과정도 소리를 지르고 욕하는 수준부터, 물건을 던지거나 신체적·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일, 인연을 단절하고 자해나 살인을 저지르는 등 다양한 형태로 폭발이 일어난다. 이 모든 상황은 자신도 모르게 쌓인 쿠폰에서 시작한다. 


한 부부의 사연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자 아내는 직장에 취직했다. 남편보다 일찍 출근하는 아내는 밥을 해놓고 나가면서 남편에게 ‘취사가 끝나면 주걱으로 밥을 뒤적여놓으라’고 당부했다. 당부에도 불구하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떡이 된 밥을 마주하고는 했다. 왜 밥을 뒤적여놓지 않았냐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깜박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어떻게 매번 깜박할 수 있는지 아내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 피곤해 지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밥통을 열었다가 덩어리가 된 밥을 보고 화가 터졌다. 아내는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고 화를 냈고, 남편은 ‘그럴 수도 있지. 별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냐’고 대거리하면서 큰 싸움으로 번졌다. 

남편에게는 별것 아닌 듯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말을 흘려듣고 집안일에 무심한 남편에게 미움의 쿠폰을 쌓아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일정하게 쌓인 쿠폰은 남편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남편은 아내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푼다며 날을 세웠다.


또 다른 부부에게 일어난 일이다. 남편이 몰래 업소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가 성병을 옮아왔다. 성병이 아내에게 옮으면서 사건은 드러났다. 성병은 치료되었지만, 남편을 향한 분노는 순식간에 시한폭탄을 만들어냈다. 아내는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편이 저지른 일이 ‘악행’으로 규정되자 순식간에 지옥이 펼쳐졌다. 남편의 잘못은 폭력이 정당화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아내는 엄청난 욕·비난과 함께 쌓여왔던 불만을 터트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던 남편은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태도에도 아내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부인은 밤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두 시누이에게 전화해 남편의 잘못을 낱낱이 고했다. 그래도 화의 불길이 사그라지지 않자, 평소에 남편과 사이가 좋던 딸에게 그의 모든 추행을 알렸다. 충격을 받은 딸은 아빠의 전화를 차단해버렸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동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심한 욕설을 퍼부을 때까지만 해도 수치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딸에게까지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또다시 그 문제를 끄집어낸다면 이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혼까지는 바라지 않던 아내는 마구 끓어오르던 분노를 멈추어야 했다. 남편으로서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충격과 고통을 받은 아내에게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둘의 문제를 넘어서는 아내의 태도에 남편 또한 더는 가만있지 않았다. 


아내로서 남편의 외도는 엄청난 분노와 함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는 평소의 불만과 함께 쌓인 분노를 아내로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불길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태워버리고 재가 될 수 있다. 이는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손해로 돌아온다. 마치 독화살을 맞아 고통스럽다며 그 화살을 자신과 모두에게 또다시 쏘아대는 것과 같다. 아내가 폭발시킨 분노는 서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덮여버렸다. 부부에게 상처만 남긴 채 표현할 기회가 막힌 것이다. 


외도는 명백히 남편의 잘못이다. 그러나 관계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만 판단하고, 잘못은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있으므로 책임도 가해자만 져야 한다고 본다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워진다. 이는 ‘내 탓이오’라고 자책하거나 혹은 남편의 책임회피에 동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남편의 잘못과 따로 떨어져 다른 한편으로 부부 관계를 전반적으로 살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부부 관계에는 드러난 문제와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함께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잘못과 별개로, 남편 또한 특정 감정의 쿠폰이 쌓여 일촉즉발 상태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실 아내는 오랫동안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품어주고 감싸주며 부드럽게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남편을 원했다. 어쩌면 아내는 소녀와 같은 사랑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남편은 말이 없고 무뚝뚝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이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는 달랐다. 남편은 아내가 간절히 받고 싶어 했던 보살핌과 친밀을 딸에게 모두 쏟는 듯 보였다. 남들은 사이좋은 부녀 사이를 부러워했지만, 아내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시샘의 눈빛으로 부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외로웠다. 딸만 예뻐하는 남편에게 무척이나 서운했고, 그 감정이 점점 그레이 쿠폰을 만들어냈다.


반면에 남편은 아내와의 육체적인 관계를 원했다. 아내는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남편과의 잠자리를 자주 피했다. 아내의 거절이 남편에게는 사랑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여졌고, 이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외롭고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육체적인 욕구를 아내와 터놓고 이야기하며 해결하기보다는, 쉽게 돈을 주고 얻으려고 했던 것은 분명 문제였다. 부부는 사랑을 보는 생각 자체가 달랐고, 서로에게 한 번도 자신들이 원하는 사랑을 말해본 적이 없었다. 부부 문제는 주체가 되는 부부가 직접 마주 앉아 다루어야 하는 사안이다. 물론 쉽지 않다. 지뢰를 제거하는 심정으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객관적인 도움을 줄 전문가가 필요할 수도 있다. 어렵겠지만 분노의 감정과 비난의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부부 문제를 누가 ‘옳고 그르고, 잘하고 잘못함’으로 보는 관점 또한 위험하다. 옳고 그름으로 상대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운명을 탓하는 것은 고통의 바퀴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쪽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해내는데, 상대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숨겨진 진짜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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