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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y 15. 2020

9. 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다

간절히 호소한다는 의미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한 지 몇 년이 지나서였다. 갑작스러운 이혼 선언에 남편은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 자신이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언급하며 농담처럼 한마디를 덧붙였다.

“진작 알아듣게 이야기해주지.”


어이가 없었다. 지난 세월,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얼마나 간절하게 호소해왔는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감당하지도 못할 술을 마시고 감정을 쏟아냈다. 반대로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기도 했다. 말을 멈추면 남편이 먼저 다가와 이유를 물어볼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내가 버티지 못했다. 때로는 우리 문제에 집중하자며 한강이나 공원 같은 한적한 장소를 찾아가 호소하기도 했다. 내 말이 조금이라도 남편의 마음에 가닿기 바라는 간절함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초반에는 들어주는 것 같아 기대했지만, 나중에는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음을 알았다. 원망과 비난, 하소연과 협박, 먼저 잘못했다며 무조건 백기 들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에게 호소했다.

 

부재한 남편이 내 옆으로 돌아와 준다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며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간절했지만, 그 간절함이 남편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견고한 장벽처럼 너무 답답했다. 남편과의 소통은 어려웠고, 내가 원하는 부부 관계는 불가능해 보였다. 마침내 진짜 이혼을 결심하고 나섰을 때, 그제야 내 목소리가 남편의 귀에 가닿았다. 그저 조용히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23년 동안의 호소는 전달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조용한 한마디는 바로 알아들었을까?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 간절한 호소는 아무래도 친정어머니의 그것과 닮았던 듯하다. 어머니는 큰돈이 필요할 때마다 동네 부자 아저씨에게 돈을 빌렸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그에게 집안 사정을 깨알처럼 낱낱이 설명하며 간절히 호소했다. 돈을 빌리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사 치부까지 드러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아저씨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고마운 사람인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은행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원금도 때맞추어 모두 갚고 있었다. 오히려 그 아저씨가 큰 이자로 빌려가는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할 입장이었다. 간곡하게 호소하는 어머니 태도 때문에 그는 마치 자신이 우리 집의 은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당당했다. 


어머니의 태도는 상황을 개선할 권한과 힘이 상대에게 있다고 여기는 이면의 메시지였다. 호소가 간절할수록 상대의 권한과 힘은 더 크게 느껴진다. 남편을 향한 나의 호소 또한 우리의 상황을 개선할 권한과 힘이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다는 의미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나 나는 왜 그토록 상대에게 간절히 호소해왔을까? 아기의 성장 과정에 비유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아이를 낳고 집에서 몸조리할 때였다. 시부모는 산모와 아기를 위한다며 방 온도를 찜질방만큼 높여놓았다. 산모인 나는 괜찮았지만, 아기에게는 더운 환경이었다. 태열기로 아기 얼굴과 온몸이 발갛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뒤에야 온도를 낮추었고, 아기의 태열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기는 더워도 덥다고, 추워도 춥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양육자의 판단에 따라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뿐이다. 아기는 울음이나 표정으로 필요를 표현했음에도 전달되지 못할 때 비로소 몸 상태로 드러난다. 아이는 말을 배우면서 점차 필요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성장할수록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늘어나고 표현은 줄어든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충족할 줄 알게 된다. 


내 경우에는 그림을 배우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번 이후 제일 먼저 화실을 등록했다. 더는 어머니에게 조를 필요가 없었다. 또 친구처럼 대학에 가고 싶다고 호소하지 않아도 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번 돈으로 학교 공부를 했고, 이후로도 필요한 것들을 찾아 해결해나갔다. 결혼하고 나서는 피아노를 배웠고 어릴 때 로망이던 내 피아노를 3년 할부로 살 수 있었다. 호소하지 않고도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성인이 된 나에게 기쁨이었고, 스스로의 힘을 느끼는 계기였다.


스무 살 이후에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았는데, 결혼하는 순간부터 다시 아이가 되었나 보다. 어머니에게 호소하던 그때처럼 모든 것을 남편에게 호소했다. 어머니 자리에 남편을 앉혀놓고 나에 대한 모든 권한을 부여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나는 전적으로 남편 한 사람에게만 의존했다. 나중에야 남편이 나와 함께 행복할 마음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더는 참고 견딜 이유가 없었다.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긴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만 살자고 말했다.


이혼 선언을 시작으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내 삶의 주인은 나임이 분명해졌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부모도 남편도 아닌 내 두 손에 달렸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상황을 변화시킬 힘도 내게 있었다. 상대만 보면 그가 변하지 않는 한 불행을 바꿀 수 없다. 외부 탓은 자신의 책임에 대한 직무유기이자 여전히 아이로 살겠다는 태도다. 내게 일어난 모든 책임은 1차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른’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나의 필요를 위해 직접 스스로 행동한다는 의미다. 무엇을 원하고 얼마만큼 필요로 하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인생을 스스로 거머쥐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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