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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뇌출혈

그때가 바로 재난의 시작이었다.

by 꿈을꾸는아이 Jan 28. 2025

엄마는 뇌출혈 환자

    나는 T다. 그래서 감정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하게? 또는 무던하게 지내가는 편이다. 누군가의 비보, 가령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나 크게 다쳤다거나 등의 얘기에도 감정적인 반응은 더딘 편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뇌출혈 사건은 그런 나 자신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누군가의 힘듦을 듣고 느끼는 간접적인 감정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번에는 물리적인 반응부터 나타났다. 퇴근길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걷기조차 어려웠고, 생전 마시지 않던 술(고작 맥주 한 캔이었지만)을 들이키며 하루를 탄식으로 마감하는 루틴이 생겼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엄청난 병원비로 아내와 갈등이 깊어졌고, 아내는 그때부터 독박육아를 떠안았다. 이번 일을 기점으로 나는 가정을 꾸리고 사는 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가족사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 집안은 정말로 양파 같았다. 까도 까도 새로운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빚, 종교 갈등, 바지사장, 임금 체불…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2021년 8월 10일

그날은 여느 때처럼 무더운 여름날의 아침이었다. 땀을 흘리며 눈을 떠보니 아빠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이지?’

새벽 시간에 전화가 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약간의 긴장을 안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중 듣게 될 내용을 미리 알았다면 약간의 긴장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 아빠 무슨 일이에요?’, 

‘잘 잤어?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어 병명은 뇌실내 뇌출혈이래. 다행히 같이 있던 분들이 119에 신고해서 빠르게 대처했어, 수술은 잘 마쳤다고 하니깐 결과를 기다려보자’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뒤섞이며 내 몸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알겠어요, 아빠.'


통화를 끊고 나는 현실을 직시하려 애썼다. ‘이게 꿈은 아닐까? 정말 내가 방금 들은 게 사실일까? 뇌출혈… 뇌출혈이라니.’

인터넷에 접속해 뇌출혈에 대한 정보를 찾아 나섰다. 병의 원인, 예후, 생존율… 아무리 알아봐도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허우적댔다.


가족 모임

    며칠 뒤, 가족들과 엄마가 있는 병원 근처에서 모이기로 했다. 각 지역에서 출발한 우리는 강원도 원주에 모였다. 정확히는 엄마가 대표로 있던 회사 사무실이었다.

    모임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아빠가 모임 장소를 이곳으로 했는데, 나도 회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분명한 건 존재하면 안 되는 이름 모를 부동산 개발법인이며, 엄마는 바지 사장이라는 사실, 그래서 제발 사장노릇 그만하라고 엄마에게 수십 번 얘기했던 회사였다. 어쨌거나 꺼림칙한 그곳에서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모였다.

엄마는 6남매다. 모두가 온 것은 아니었지만 대다수가 모여서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고 같이 위로하는 자리였다. 가족들이 엄마의 소식을 듣고 와준 것에 참 감사하고, 형제들이 있음이 좋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재난의 시작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모를 이때가 가장 좋았었다. 앞으로 병원비를 어떻게 할 것이며 엄마는 누가 어떻게 돌보는 게 좋을지 등의 현실적인 얘기는 없었다. 앞으로의 모든 일을 관장하게 될 무한책임사원인 나는 예감했어야 했다, 모든 책임은 이혼한 아빠도 아니고, 소득이 없는 동생도 아닌, 꾸준한 소득을 가지고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부양의무자인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나의 재난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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