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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Apr 03. 2020

바다를 보며 컵라면을 먹는 기분

2020년 4월 3일-나로 살기 94일째    


대학생 때 누구와 동행했는지는 비밀은 아니지만, 동행인 김씨라고 부르기로.

대학생 때 바다가 보고 싶었다. 우리는 가진 돈이 없었다. 열차를 알아보니 제일 저렴한 열차편 3~4시간 타고 가면 바다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이 충남 아산이라서 아산에서 천안역까지는 버스로. 천안역에서 바다까지는 기차로 여행을 떠났다. 부산을 갔다. 부산역에서 바다가 보이는 역까지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봤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의 일렁임을 계속 바라보고, 우리는 말없이 한동안 바다를 보았다. 날이 추워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남은 돈은 다시 돌아가야 할 차비를 제외하고 몇 천원 정도. 근처 24시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두 개 샀다. 편의점 안에서는 맘껏, 양껏 먹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삼각김밥 하나와 핫바도 하나 샀다.     


편의점 앞에 의자와 파라솔이 놓여져 있었고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컵라면을 먹었다. 근처 횟집이 즐비했다. 커피숖도 많고, 돈만 있으면 들어가서 배부르고 등 따수운 곳이 여러 곳 보였다. 김과 나는 우리는 바다를 보러 온거니까. 그거면 족하다고 서로에게 위안 삼아 말하며 컵라면을 먹었다.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더 이상 소비를 할 수는 없었다. 이거면 됐다. 그리고 다시 열차를 타고 대학교로 돌아왔다.    

 

몇 년후 다른 사람과 바닷가에 와서 회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숙소도 얻어서 며칠 묵기도 했다. 돈이 있다는 것.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배는 불렀는데 또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그건 대학시절의 낭만 같은 거. 돈이 얼마 없을 때 바다를 보며 결심했던 무언가.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 같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너무 배고팠고, 오고 가는 열차 안에서 등과 엉덩이가 너무 불편했다. 그게 젊음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졸업반일 때 코레일에서 내일로라는 여행 상품이 나왔다. 청춘들에게 기한을 정해놓고 열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게 하는 것이였다. 물론 빈 좌석이 있으면 의자에 앉아서 갈 수 있지만 빈 좌석이 없을때는 열차 복도 끝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여행을 했다. 그래도 좋았다. 혼자 내일로 티켓을 끊고 부산, 해남, 춘천, 통영 등 다양한 곳을 다녀왔다. 돈이 없었고, 그때는 게스트하우스라는 개념이 없어서 동네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고되었고, 열차가 무제한이지만 내가 떠난 남쪽 여행은 기차가 안 다니는 것을 알고 버스비가 더 많이 나와서 당황하기도 했다. 처음이라 가능한 여행이였고, 어려서 감당할 수 있는 무지함이였다.     


물론 지금도 내일로 여행 상품이 있지만 지금은 그곳에서 원하는 청춘연령에서 멀어져서 해당사항이 없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고, 열차 안에서 좌석을 구입 할 수 있는 돈이 생겼다. 내일로 여행과 바닷가에서 컵라면을 사먹었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 낭만은 돈 주고도 못 사는 낭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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