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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Apr 08. 2020

오르골, 스노우볼은 어른이 되면 사는 거예요?

2020년 4월 8일-나로 살기 99일째    

 

어렸을 때 좀 힘들게 살았다.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늘 먹던 것만 먹어서 새로운 음식이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피자 한 조각을 고등학교 3학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학부모님들이 돈을 모아서 반 학급에 돌렸을 때 간식으로 처음 먹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둥둥 떠 있는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풍선들은 내가 생각하는 부자. 이를테면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집. 집 화장실이 푸세식이 아닌 집. 고모가 안 아픈 집(고모는 조현병이 있다). 그런 집을 부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잣집 애들만 살 수 있고 들고 다닐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던 충주에는 충주댐이 있다. 충주댐 근처에 지금으로 따지면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식당과 기념품을 파는 곳들이 함께 있었다. 아빠를 따라 식당에 갈 때면 일찍 먹고 복도를 따라가서 기념품 있는 곳을 항상 갔었다.     


그리고 스노우볼이라는 걸 처음 봤다. 만지면 안된다는 주인분의 말에 절대 안 만지는 척 하며 스노우볼을 흔들어 보았다. 하얀 눈송이들이 동그란 볼 안을 가득 채웠다. 나도 모르게 주인분을 보며 이거 얼마냐고 물어봤다. 그때 당시에 스노우볼은 2~3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금액을 듣고 나서... 어린 나이에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것도 부자들이 살 수 있는 거구나. 내 것이 아니구나. 충주 시내에 현대타운이라는 지하상가가 있었다. 그곳에서도 똑같은 것을 팔았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스노우볼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매일 같이 똑같은 장소에 가서 스노우볼을 보았다. 어느날 주인분이 알림시계 뒤에 알람 맞출 때 돌리는 것처럼 무엇을 돌리더니 자그마한 장난감에서 소리가 났다. ”우와, 이게 뭐예요?“ 오르골이라고 했다. 이번엔 얼마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내 가난을 들키지 않고 매일 같이 이 소리를 듣고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자주 오기를 바랐다. 그렇게 난 갖고 싶은 여러 가지들을 나중에 내가 돈 벌면 사야지, 돈 벌면 사야지, 결심했다. 그때 내 나이가 10살 남짓. 초등학생 때 였다.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 친구들과 같이 놀이동산에 놀러갔다. 우와... 그 캐릭터 풍선을 팔았다. 그래도 용돈을 받았기 때문에 살 수 있고,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돈이 있었는데, 풍선을 보고 눈물을 터트렸다. 놀이동산에 같이 간 친구들은 왜 그러냐고 물어봤지만, 난 내 어릴적 슬픔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나서도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스노우볼이나 오르골이였다. 토토로 영화음악이 나오는 오르골을 갖고 싶었다. 어렸을때는 2, 3만원 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두세배 넘는 가격대였다. 남자친구는 사주겠다고 했지만, 끝끝내 괜찮다고 했다. 사주려고 하면 화를 냈다. 내가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지? 잘 모르겠다. 그냥 화가 났다.  

   

30대가 되었다. 두물머리에 살게 되면서 산책하러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뭔가가 반짝반짝 거리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LED 풍선이라고 했다. ”우와, 이거 얼마예요?“ 5천원이라고 했다. 결국 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투명한 풍선을 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같이 동행했던 분도 너무 좋아하는 날 보며 즐거워해주셨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언제부터 갖고 싶었는지. 그저... 난 부자가 된 기분이였다. 지금은 스노우볼이나 오르골을 살 수 있지만, 소유하지 못하겠다. 아직 가난의 상처가 있다. 조금만 더 어른이되면. 그때는 사야지. 하며 난 내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해했다.     

밤이 어두울수록 LED풍선은 빛났다. 어두울수록 더 반짝거리는 그것이 내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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