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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Feb 09. 2020

오늘 하루 3편의 단상

2020년 2월 9일(일) - 백수 40일째        


#1. 아버지와 함께 점심식사로 곰탕을 먹으러 갔다. 수육이 먼저 나오고 곰탕이 두 그릇 나왔다. 각자의 기호에 맞게 넣으라고 썰어진 파와 소금, 후추가 있었다. 나는 내 곰탕에 파를 넣고 있었다. 아버지는 본인 곰탕 국물을 한 입 떠서 드셨다. 맛이 싱겁다고 소금을 넣으셨다. 그리고 내 곰탕에도 내게 묻지 않고 소금을 넣으셨다. 곰탕을 한 입 떠 먹었다. 내 입맛에 딱이다. 미소가 나왔다.      


익숙하고, 아무렇지 않게 딸의 곰탕에 소금을 쳐주는 아버지. 그게 어제 나의 행복이다.      


#2. 집에 크고 넓은 다판이 있다. 글 작업을 할 때 이 다판에 노트북을 두고 방석을 깔고 앉아서 작업을 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다판이 있는 공간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한 건물에 불이 훤히 켜져 있고 주차장도 환했다. 작년에 직장 다니느라 이 공간에 앉아 있은 적이 별로 없어서 못봤었는데, 생각해보니 나와 마주한 곳에 새 건물이 완공

되었다.     


처음 그곳은 3층짜리 장례식장이였다. 내가 사는 건물은 5층이다보니 다른 건물들에 가려져서 장례식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곳을 허물고 5층이 넘는 장례문화원을 지난해 완공했다. 그래서 내 눈높이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 저 곳에서는 누군가 돌아가시고 조문객을 받느라 불이 꺼지지 않는구나. 무섭고 두렵고 혐오스럽기보다는 내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 삶은 죽음과 마주하고 있구나. 먼 곳에 있는 게 아니구나.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 머지않았다는 뜻은 아니기에. 난 또 하루를 산다.                         


#3. 커피를 이틀 동안 마시지 않았다. 보통 하루에 한 잔의 커피를 사서 마신다. 이틀 커피를 마시지 않고 두 잔의 값으로 후원을 했다. 백수라서 여유의 돈이 있을리 없고 차라리 마시려고 했던 커피를 마셨다는 셈 치면 되는 거니까.     


공황장애 7년차이기 때문에 나도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2번째 낸 독립출판물도 공황장애 에세이다. 그 인세가 조금씩 들어오면서 이건 내가 쓴 글값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나누어 살아야 할 값어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황장애 가진 분들 중에서 형편이 어려워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에 대해서 치료비 지원을 하게 되었다. 직장 다녔을때는 월급받고 후원을 해도 뿌듯함이 지금 정도가 아니였는데. 백수가 되어서 후원하는 건 의미가 깊다.     


오래도록 후원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금액을 커피 두 잔 값으로 정했다. 소소하게, 의미있는 일을 하며 앞으로도 살았으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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