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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Feb 22. 2020

코미디가 필요해

2020년 2월 21일-나로 살기 52일째-코미디가 필요해-    


잠든 사이에 부재중 통화가 여러 건 있었다. 다른 분들은 다시 전화해서 용무를 물어보면 되는데 오전에 할머니에게 걸려온 부재중 통화가 마음이 쓰인다. 손녀딸이 낮밤이 바뀌어서 오전에 숙면중이라는 걸 아시는데... 그 숙면중에 전화를 했다는 것은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오후 늦게 전화를 걸었다.    


84세 충주에 홀로 계신 할머니께서 오늘 갑작스레 입원 하셨다. 요며칠 전화 목소리가 안 좋다...했더니 4일 동안 식사를 하지 않으셨단다. 아니, 복지관에서 매일 밥이랑 반찬 가져다 주시는데, 요양보호사가 매일 오는데 밥 안 차려 주고 뭐하는거지?     


오늘 오후 6시 10분쯤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께서는 친척분이 잠깐 집에 와서 입원수속을 밟아주고 갔다고 했다. 그런데 저녁 식사시간인지 할머니께서 식사하시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걱정이 사라졌다. 다시 잘 드시고 먹겠다는 의지로 힘주어 드시는 소리에 안심했다.     


코로나로 인해 웬만하면 면회금지, 그리고 그 병원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되어서 할머니 기저귀 갈아드리는 건 병원에서 다 해주신다. 이미 재작년에도 비슷한 일로 입원하신 적이 있다. 원래 25일날 충주에 가려고 했었는데 할머니께서 입원하셨으니까 조금 일찍 서둘러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버지는 집에 계신것보다 병원에 더 잘 지내고 계실테니까 걱정하지말라고 하셨다. 아버지도 일로 인해 당장 할머니께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나 또한 공황장애가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충주까지 가는 건 무리다. 나 백수인데... 시간 많은데... 그러함에도 아플 때 할머니 곁에 있어드리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화나는 걸까. 오늘 많이 기분이 다운되었다.     


내가 사는 건물 2층에 할머니 2분이 같이 사신다. 건물주 분이 정정해보이시고 좋아보이신다고 했더니 할머니 두 분께서 밥 해 먹는 게 귀찮아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된다고. 그런 말을 하시는 걸 들었었다. 우리 할머니에게 지금 사는 재미가 뭘까? 할머니는 매 끼니 혼자 드시면서 사는 낙이 뭘까. 할머니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해서 식사를 일부러 안 하셨던 것 아닐까. 이 또한 관심의 표현인데 내가 알아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다가 나직히 말해본다.

“할머니에게도 코미디가 필요하겠구나”

나는 혼자 살고, 백수이지만 내가 살면서 느끼는 재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TV예능 프로그램도 그렇고, 펭수도 그렇고, 배우 박정민도 그렇고, 전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들, 나의 지적 호기심, 앞으로 살면서 벌어질 일들, 내가 쓰게 될 글들 등등 재미가 풍성하다. 할머니에게도 이런 재미, 코미디 같은 요소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 또한 코미디우먼이 되어 매일 전화드리며 즐거움을 드린다면 그 또한 기쁘지 않을까. 또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25일 충주에 간다. 24일날 할머니 혼자 퇴원하실 예정이다. 핸드폰이랑 충전기 챙겨가셨으니까 자주 연락 드리면 된다. 고모가 입원한 정신병원은 코로나로 인해 외박도, 외출도 안된단다. 이번에는 할머니, 아버지, 손녀딸인 나 이렇게 셋이 만날 것 같다. 올해 벚꽃은 다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금요일 저녁. 오늘 할머니에게 코미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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