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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Mar 03. 2020

2년 만에 내 방에서 잠들다.

2020년 3월 3일-나로 살기 63일째    

  

경기도 양평 시골에서 나 혼자 살게 된 지 2년이 넘어간다. 그 시간 동안 TV가 있는 거실이 내가 잠들던 곳이다. 내 방은 책과 옷들로 둘러 쌓여있고,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하고 남은 부자재들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안방은 넓기는 했지만 왠지 정이 가지 않아서 거실에서 주로 잠들었다. 어느날부터인가 TV보고, 편해서 거실에서 자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방을 잃고 거실에 쫓겨와서 잠든다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전에 집에 오셨던 아버지도 집에 있으니까 없던 병도 생길 것 같다고 좀 치우면 안되겠냐고 청유형 반, 강제형 반으로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이제 백수가 되었으니 천천히 짐 정리를 시작하려고 하던 참이라고 말씀드렸다. 이제 3월이 되어가도록 백수였으면서 아직까지도 치울 생각 한번도 안 했다는 내가 더 대단하다고 말씀하셨고, 난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였다. 그렇게 방 정리를 시작한 지 삼일째다.   

  

방 청소를 시작한 첫 날. 나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였다. 방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을만큼 짐이 쌓여 있었다. 미지의 공간에 나 혼자 떨어져서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 모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이러다가 벌레라도 나오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컸지만 다행히도 벌레도 내 집은 더러워서 피했나보다. 방 청소 첫째날, 내 방에 방바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잔돈 몇 푼과 짝을 잃어버렸던 양말을 몇 켤레 찾았다. 드디어 양말들에게 짝을 찾아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방 청소 둘째날, 책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시작하며 안 입는 옷과 잡화들, 도서를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예전에도 한 번 기증한 적이 있었는데 택배 상자 3박스 정도 물품이 쌓이면 직접 아름다운 가게 측에서 택배를 가지러 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빈 박스 3개를 펼쳐놓고 카테고리 별로 정리를 시작했다. 착용감이 있고 오래된 옷은 50L쓰레기 봉투로 들어갔다.    


방 청소 셋째날, 파티원이 필요했다. 나와 함께 자잘한 물건들을 함께 정리해 줄 수 있는 파티원. 다행히도 전 직장 다닐 때 알게 된 중2, 대2 친구들이 파티원을 해주기로 했고, 그 후로 하나하나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안방 정리를 금방 끝났고, 거실에 있던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박스도 복도에 내놓았다. 내 방도 나 혼자 정리를 해야할 몇몇가지를 빼놓고 방바닥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울 수 있는 공간도, 책을 읽을 공간도 생기게 되었다. 파티원 두 명에게 감사의 뜻으로 피자와 스파게티를 주문해서 식사도 제공했다.

    

오랜만에 내 방에서 잠을 청한다. 예전에는 거실이 편하고 TV가 있어서 편안함에 몸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내 방, 내 공간에서 잠들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 공간을 찾게 되어서 다행이고, 앞으로 남은 주방, 화장실, 창틀 정리를 위해 몸을 누이는 바이다. 백수의 장점을 잘 발휘하여 아주 천천히 느리게 나만의 정리를 시작할 것이다. 뿌듯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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