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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Feb 08. 2020

겨울 유니폼. 티셔츠 3장 요정

2020년 2월 8일(토) - 백수 39일째    

 

2020년 백수가 되면서 옷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밖에 나가면 2~3시간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귀가하면 옷을 한번 입고 세탁하는 것도 아까워서 2~3일씩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지난 핸드폰 사진들을 뒤적거리다가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티셔츠 3장만 돌려 입고 있었다. 살은 쪘어도 남이 보는 시선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옷 사는 것도 좋아하고, 다음날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까 설레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시간이 없어졌다. 편한 옷, 은근히 따뜻한 기모가 들어간 옷을 고르다보니 매번 이 3장만 입었다. 그리고 묘하게 카타르시스가 생겼다.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안 쓰고, 나도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친김에 입지 않는 나머지 겨울 옷들을 옷 정리함에 넣어서 한구석에 쌓아놨다. 내게 지금은 이 3장으로 충분하니까. 단조롭게 사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난 티셔츠 3장만 돌려 입는 요정이 되었다. 그런 내게도 관심있는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양말이다. 혼자 사는 집에 무슨 짐이 그렇게 많다고 양말은 매번 짝이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똑같은 색상과 디자인의 양말을 여러 켤레 사게 되었고, 한 쪽씩 잃어버려도 이제 스스로 눈치도 못 챈다. 너무 한 디자인의 양말만 사면 또 질리다보니 양말 당 5켤레, 6켤레씩 사두었다. 매번 새 양말을 신는 기분이다.     


두 번째로 낸 독립출판물에 짧게 쓴 바 있는 내용인데, 초등학교 때 내 옷은 한 벌 이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매일 같은 옷만 입고 다녔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물어봤다. 

“너는 왜 그 옷만 입어?”

“...이 옷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옷이라서 매일 같이 그 옷만 입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 형편은 어려웠고, 내 옷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당장의 쌀 값, 병원비, 생활비가 급급했다. 고모는 조현병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입고 다니는 옷을 항상 가위로 찢어 놓았다. 그래서 매일 입고 있는 그 옷 한 벌만이 내가 가진 멀쩡한 옷이였다. 어렸을 때 친구가 내게 왜 같은 옷만 입냐는 그 말이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이 되어서도 뇌리 속에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거나 월급을 받으면 의류비에 쓰는 돈이 많았다. 남에게 보여지는 내 옷이 신경쓰였고, 나 또한 같은 옷을 자주 입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때는 브랜드를 봤다. 빈O, 폴O 등 값나가는 옷을 사서 입어야 내 가치가 올라가는 기분이였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며 오피스룩을 주로 구입했다. 그리고 30대가 되면서 편한 옷, 맞는 옷으로 관심사가 바뀌었다. 예전에 사둔 옷이 많아서 한...10년은 옷을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옷이 차고 넘쳤다. 그런 나의 히스토리를 알고 나면 지금 3장의 티셔츠만 돌려 입으면서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은 마음을 많이 내려 놓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늘 긴장하고 초조하고 불안했는데, 이제 그런 눈치없이 내 일상을 살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속옷은 매일 갈아입는다. 그래서 내 몸에서 꼬리꼬리한 냄새가 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허허- 세탁기에서 세탁이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이제 또 내 유니폼을 널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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