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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들에게 마음이 갈까?

'인디언' 아닙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탐험가 콜럼버스가 머나먼 인도를 찾아 헤매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이곳이 인도라고 믿고 그곳에 살던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른데 유래하여 인도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들이 그때부터 꽤 오랫동안 인도사람들이라고 불렸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 티비에서 보이는 아프리카 원시부족들을 보고 '아프리카 인디언',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원시부족도 '아시아 인디언' 말도 안 되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붙이면서 비문명권에 살며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약간 멸칭으로써 '인디언'이라는 명사를 붙였다.(네이밍이라는 게 그러고 보면 소름 끼치게 무섭다. 몇 백 년을 오류 속에서 인식하게 하다니)


그들을 부르는 명칭 또한 수십 개가 되어 주류가 되는 부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부족 아파치(Apache), 모히칸(Mohican, 모하비(Mohave), 체로키(Cherokee)등이 있다. 그러나 이제 캐나다에서는 그들을 통칭하여 애보리지널 피플(Aboriginal People), 인디지니어스 피플(Indiginious People),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 등으로 부른다. 이에 더하여 유럽  정복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을 부르는 명칭 또한 매우 다양하여 Cree, Me'tis 등이 대표적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매니토바주 위니펙(Winnipeg, Manitoba)에는 꽤 많은 원주민이 산다. 몇 달 전까지 지냈던 캘거리에는 많이 보지 못했는데 여기에서는 특히 다운타운에는 그들이 많이 보인다. 그 이유는 매니토바 주와 바로 옆 사스카츄원 주에 그들이 사는 정착촌이 있고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주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구호단체가 다운타운에 몰려있어서 많이 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에 보이는 많은 원주민들이 노숙생활을 하고 때때로 구걸도 하고, 소란을 일으키고 때론 심각한 범죄를 벌여 한국을 비롯한 치안이 안전한 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기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부터 콱 인식하게 되고(나 또한 여전히 다르지 않다.) 혹시라도 나에게 접근하지 않을까 조금은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캐네디언들은 예의 그 겉으로는 속내를 절대 내비치지 않은 모습으로 그들의 접근도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그들에게 먹을 것도 나누어 주고 꽤 오랜 시간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저런 아저씨한테 가까이 가면 안 돼! 나쁜 사람이야."라고 철저히 교육받은 우리 한국사람들은 저 사람들이 정말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는데도 혹시나 하는 각에 빙  돌아간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노숙자도 아니고 범죄를 일으킬리는 없다. 일부는(결코 많지는 않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다. 학교 직원으로도 근무하고, 공공기관, 핸드폰 가게 등에서 생활인으로 잘 살아나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돕기 위해 취업 시 우선고용의 혜택을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전반에서 그들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민족의식 같은 건데 이것은 오히려 내가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일 수 있다.  그 옛날 빙하기 때라고 들었는데 아시아에 살던 황인종들이 얼어붙은 바다를 걸어(아님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붙어있는 상태였나 잘 모르겠다.) 아메리카로 온 이래로 그들의 문화를 간직하며 살다가 극악무도한 유럽 침략자들에 의해 살육당하고 그들이 묻혀온 전염병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나간 역사를 기억하는 그들이 결국 목적은 그들을 멸족시키는 것임을 자각하고 캐다다 정부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의 정착촌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많이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개인소유 개념이 희박해 예를 들어 우리 상식으로는 훔친 거나 다름없는 것에도 그냥 필요해서 가져다 사용한 것뿐이지 절도는 아니다. 뭐 이런 개념이라고 한다. 어쩜 그분이 보았던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면이 그분에겐 크게 다가올 수도 있었다 하더라 이런 면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리는 만무하다.


내 생각은 이렇다. 그들이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며 퍼스트 네이션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려면 선조들이 이룩하였던 훌륭했던 문화를 현세를 사는 본인들과 후손들에게 전승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약에 취하고 알코올에 취한 모습이 주로 보이니 안쓰러울 따름이다. 탄압받으며 죽어가던 선조들이 바랬던 것이 이런 모습은 아닐 텐데 말이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심해져서 야외활동도 조심스러운 때 애보리지널 피플 여러 명이 월마트 앞 주차공간을 마스크도 안 쓴 채로 술병을 든 채로 지나가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 여기는 원래 우리 땅이었어! 우리는 이렇게 우리 맘대로 소리 지르고 걸어 다녀도 상관없어! 여기 모든 게 다 우리 거야!"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라면 얼마 전 치러졌던 매니토바주 주지사 선거에서 인디지니어스 피플이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오!! 역시 진보의 아이콘 매니토바! 퍼스트 네이션을 주지사로 뽑아주다니 그들에게 한없는 축하를 보내고 싶고 소수민족인 한국인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들도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이웃으로 살아주길 바란다.

 

다음 주 월요일은 루이 리엘 데이(Louis Riel's Day)이다. 그는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인 Me'tis로 그들 퍼스트 네이션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싸웠던 인물로 매니토바주를 캐나다의 다섯 번째 주로 인정받게 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으나 반역죄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쳐해 진다. 캐나다 법원은 2000년대 초에 와서야 그의 무죄를 다시 선고하게 되는데 그의 투쟁정신을 온 캐나다에서 기념한다.(실제로는 11월이라는데 매니토바에서는 2월에 공휴일이 없다는 이유로 2월에 기념일로 제정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폭압적 정권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재평가되고 있는 요즘이 오버랩된다.


* 개인적 사정으로 꽤 오랫동안 글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제 글을 기다리는 독자님이 계셨다면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연재날짜는 아니지만 다소곳이 올려봅니다.   


이미지

https://rabble.ca/indigenous/wab-kinew-becomes-first-first-nations-premier-in-canadia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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