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에필로그- 무탈하게 감사했던 나날

누나, 걱정 마. 돈 있어요.ㅋㅋ

나다에 새 둥지를 마련한 지 어언...

와!! 양 손가락을 동원해서 꼽아보니 육 년 하고 십 개월에서 며칠 모자라네. 정말 후딱 지나갔다. 산더미 같은 짐을 공항 리무진 버스에 싣고 어린 아들 녀석들 둘과 공항으로 향한 지가 그리 오래전 같지 않은데 아이들은 벌써 대학생이 됐고 난 이제 여기서 영구적으로 할 일을 계획하며 석 달 전 다니러 온 아내에게 매일같이 닦달을 당하고 있다.

참, 작가소개 난에 적었던 "육 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는 이제 아쉽게도 지난 일이 됐다.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넣고 여러 차례의 면접을 보고 해서 괜찮은 자리에 다시 취업을 했다. 약 8개월 만에 다시 하는 일이긴 하지만 놀면서 가졌던 약간은 불안한 마음과 보이는 눈치보다 조금은 당당하게 그리고 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느껴지는 육체적 노곤함이 나의 자존감을 다시 올려주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동료들(이번에도 역시 한국사람은 한 명도 없는 오로지 영어와 타갈로그어만 들리는 업무공간)그리고 이전 직장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스타일의 일이, 또다시 신입이어야 하는 것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는 건 사실이다.

덕분에 다니던 영어학원은 더 이상 못 다니게 됐다. 일주일에 나흘간의 수업 시간 중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이틀 정도 간신히 출석할 수 있었는데 한 달에 사흘 이상 결석하게 되면 제적처리가 된다는 안내를 담임선생님에게서 받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찰나에 관리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미 사흘 이상 결석을 했는데 다시 출석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가. 어렵겠다고 하자 바로 제적처리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좀 아쉽다. 노는 기간에 영어학원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고 영어 자존감을 지켜주었던 기간이었는데 매정하게 퇴출당하고 나니 조금 헛헛하다.

다음 주 쉬는 날에 아내가 가지고 온 여기에서 인기 있는 한국라면과 김, 몇 가지 스낵류를 가지고 선생님을 만나러 가야겠다. 'Heather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 덕분에 캐나다를 제대로 알게 고요. 고달픈 이민생활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건강하시구요.'   




이번 화로서 "난 누가 뭐래도 캐나다가 좋더라."는 연재 브런치북을 마치게 됐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쉽지 않은 배경부터 캐나다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즐겁기도 황당하기도 애처롭기도 했던 경험들을 이 브런치북에 녹아내려했다. 캐나다에 살지도 않는 사람들로부터(대표적으로 나의 아내) 도대체 왜 이 나라에서 살려고 하느냐라는 아주 근본적인 힐난 섞인 물음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을 때(여기서 살아온 시간에서 지금 쯤 되면 내가 지금 여기서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약간의 회의도 들고 아이들도 이제 성인이 됐으니 이제 나의 안정적인 미래를 생각해야 될 때니까 더욱)이 브런치북을 완성해 가면서 육 년의 기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뭐 이만 하면 목표한 것에서 실패한 것도 없고 뭐라도 잘못되어 기간이 무한정 늘어난 것도 없고 타고난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았고 때때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고 아주 가끔씩 그리운 우리나라에도 다녀왔고... (그런데도 왜 아내는 늘 부족하다 마음에 안 든다 여기서 왜 사냐 불만을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




보름 정도에 한 번씩 연락을 하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누나와 이야기를 하면 꼭 마지막에 누나가 나에게 묻는 말이 있다.

 "야! 너 혹시 돈 안 필요하니?"

"돈??"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듣는 말이라 매번 당황스럽다. 갑자기 웬 돈?

"돈은 왜? 아니 안 필요한데."

"아니, 혹시 너 거기서 돈 필요한데도 말도 못 하고 끙끙대고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럴 수 있잖아."


아휴~~ 우리 누나 참 많이도 변했다. 얼마나 앙칼지고 표독스럽고 괴팍했는지.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내가 아마 초등학교 육 학년쯤 됐었을까. 배고픈 참에 라면을 아주 맛있게 끓여서 막 먹으려고 하는 차에 누나가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갑자기 뭔가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싫다고 라면 먹어야 한다니까 자기는 절대 안 먹을 거니까 걱정 말고 가져오라고 했다. 뭔가 많이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착했던 어린 나는 누나 심부름이라 성실히 이행하며 부엌으로 돌아왔는데 부엌 문이 닫혀 있었다. 이상하다 하고 손잡이를 돌렸는데 안 열린다. 문이 잠겼다. 아뿔싸. 당했다. 문 열라고 소리치는 내 귀로 누나의 악마 같았던 웃음소리와 호로록 라면 빨아들이는 소리가 밉살스럽게 박혔다. 정말 미웠었나 보다.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ㅋㅋㅋ

하여튼 그랬던 누나가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하더니 많이 순해지고 너그러워졌다. 이제는 가끔씩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누나의 조언과 도움이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이젠 라면도 안 뺐어 먹는다.

"아이고. 돈 있어요. 걱정 마셔."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지지도가 형편없이 떨어졌다고 한다.

내가 사는 위니펙의 주인 매니토바 주,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 주 등 동쪽 지역의 하락이 특히 심하다고 한다.  원인이 집값이 많이 오르고 임금상승률에 비해 생활비의 증가가 높아 두 가지 요인이 지지율 하락에 큰 원인이라고 한다.

집값 상승의 원인은 이민자 증가이다. 실제로 순수 이민자의 증가와 더불어 최근에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용 등 이민자 증대 정책으로 실제로 집값과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 쇼핑몰 등 사람들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우크라이나 사람들로 추정되는 러시아 말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백인들이 많이 늘어났고, 아프리카 액센트가 강한 영어를 사용하는 흑인들도 많이 늘어났다. 나도 이민자임에도 이렇게 많이 받아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계속 늘어나는 이민자는 결국에는 세금문제로 귀결된다.

나한테 뜯어낸 세금을 가지고 저 이민자들, 난민들 임대료 내주고 영어공부 시켜주고 심지어 영주권을 쥐어주기도 하는구만. 이해가 간다. 그런 생각하지 않겠나. 하지만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유럽처럼 이민금지 하자는 시위도 거의 없다. 신기할 정도다. 결국 정치적으로 어떤 정부, 정당을 지지하는가로 나타나고 선거에서 판가름 나는 것 같은데 늘 이런 문제가 드러나긴 했지만 트뤼도 총리의 집권 자유당은 2015년부터 연속 3기를 이어가고 있다.


모르겠다. 아니 사실 크게 관심이 없다.

캐나다의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든 난 아직 나의 나라 한국의 상황이 더 궁금하고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단 하나, 이들의 필요에 의한 정책이겠으나 어쨌든 이민자에 호의적인 정책을 펴고 실제로 많은 지원을 감당하고, 그리고 시민들도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타민족에게 친화적인 캐나다가, 그런 나라와 국민을 이끌고 있는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나는 그냥 좋다. 실제로 굉장히 호의적이고 또한 잘 생기지 않았나.ㅋㅋ(TV에서 본 것으로는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나마 제일 예의를 갖추었던 외국 정상은 트뤼도 총리였던 것 같다.)




브런치 북 연재를 마치는 에필로그의 글이기는 하나 또다시 두서없이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적게 됐다.

글이 올라오면 꼭 찾아주시는 모든 작가님들에게 감사드리고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하는 새 손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캐나다 위니펙에 사는 사고실험가 드림-



이미지:

https://pixabay.com/ko/photos/%EB%8F%8C%EA%B3%A0%EB%9E%98-%EB%8F%99%EB%AC%BC-%EB%B0%94%EB%8B%A4-%EB%8C%80%EC%96%91-20387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