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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31. 2018

고시 낭인, 그 이후의 삶

얼마 전 신문에서 한 청년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지내다 결국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수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30대 ㄱ씨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서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한 모텔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출근하는 척을 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타들어갔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도 짧지만 고시 낭인으로 살았던 적이 있어서 더 공감이 가고 마음이 아팠다.          


중등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며 공부하다 드디어 맞이한 시험날. 시어머니가 시험에 붙으라고 108배를 해주고 신랑을 비롯한 온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에 들어섰다. 필기하는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한 탓일까. 붙어야 한다는 강박에 너무 짓눌렸기 때문일까.     


시험을 마치고 돌아와 답안을 맞춰보니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실수도 실력이라지만 억울했다. 결과는 정말 근소한 차이로 낙방. 기간제 교사를 하며 공부했으니 공부 시간의 총량도 모자랐을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한 문제만 더 맞혔으면, 한 단락만 좀 더 주의 깊게 읽었으면, 한 줄만 더 요령 있게 썼었다면, 수없이 많은 가정과 아쉬움 속에 신음하다가 결국 병이 나 버렸다.      



갑자기 천정이 빙글빙글 돌고 어지러워서 심한 구토가 나고 서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놀란 남편과 대학병원을 찾으니 전정 기관 이상이라고 했다. 입원을 해야 했다. 입원한 병실에서 처음에는 '고시에 붙었다면 이 겨울이 얼마나 포근하고 즐거웠을까'만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한번에 붙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을 책망하는 못난 짓도 끝없이 반복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옆 침대에서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온몸이 썩어 들어가던 아주머니. 처음에는 화상을 입은 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류머티스 관절염을 30년간 앓았고 약을 너무 오래 먹어 살이 썩은 것이라고 했다. 가만히 누워서 눈뜨고 말하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못 했다.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영희 아버지, 나 귀 좀 긁어줘요."

"영희 아버지, 나 오른 다리 위치 좀 바꿔줘."

"영희 아버지, 아구 나 죽네, 허리, 허리 좀 바로 해줘."     


거의 15분마다 한 번씩 간병하는 남편을 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에 나 또한 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안 된 마음에 말동무를 조금 해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시며 세 아들 자랑을 하셨다. 큰 아들은 뭐고, 작은 아들은 뭐를 하고……. 맞장구를 치며 좋으시겠다고 했지만 입원해 있는 1주일간 문병 오는 가족은 한 명도 없었다. 오직 나이 든 남편만이 24시간 중노동에 가까운 간병을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너무 안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야박하게도 나는 병실을 옮겨버렸다. 침대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아주머니 옆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적당한 핑계를 대면서 다른 병실로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주머니와 남편 분은 웃으면서 빨리 나으라고 했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많이 겪은 눈치였다. 슬픈 웃음이었다.     


새로 들어간 병실에서는 진통제를 한 시간에 한 번씩 맞는 할머니 때문에 몇 번이나 밤잠을 설쳤다. 의사들이 산소통을 끌고 달려오고……. 그 당시 유명했던 드라마에 탤런트 김희애가 달고 나온 초록색 장치. 실제로도 보니 진짜 초록색이었다. 그 할머니는 하루를 가던 진통제가 이제 한 시간도 안 간다고 하소연하며 "어머니 어머니"를 외치면서 몸을 뒤틀었다.           


중병이 아니었지만 신경과에 입원했던 탓에 중환자들을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그 스산함.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머니나 진통제로 한 시간 한 시간 연명해가는 할머니.           

고시에 떨어졌다고 생병이 날 정도로 괴로웠던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고시에 떨어졌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가? 고시에서는 어차피 극소수만 선택된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경우,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수만 명의 대학생들이 도전하지만 합격하는 비율은 3% 안팎이라고 한다. 임용고시 경쟁률도 해가 갈수록 높아져 지금은 어떤 과목의 경우 30 대 1, 40 대 1을 찍기도 한다. 어차피 극소수만 선택되는 고시.          

여기에서 선택되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의 낙오자인 것은 아니다. 사회가 불안정한 만큼 안정된 직장에 대한 희구가 더 강렬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이 사회 통념에 비춰 재단하고 평가하고 책망할 필요는 없다. ‘고시 낙방 = 인생 패배’라고 자동 반사되는 사고는 경쟁 일변도, 결과 위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심어준 왜곡된 신념이다.      


어릴 때부터 ‘성적 떨어지면 인생 끝’, ‘취직 못하면 인생 끝’ 등 사회 안전망이 미비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어른들은 각종 인생 막장을 설정해 겁을 주면서 안정된 삶의 진로를 꿈꾸도록 가르쳐왔다. 이탈하면 그대로 삶이 끝나는 것처럼 협박하면서 말이다.          


고시에 떨어져도 삶은 계속된다. 나 또한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이듬해 재도전을 준비하려다가 덜컥 임신이 되는 바람에 그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은 있다. 무언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하나 안고 사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고시에 붙는 것 말고도 다른 축복이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 국민이 교사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지 못해도 다른 길을 가면 된다. 그 길이 평탄하지 않다고 해도 그 또한 내 인생이다. 중국 근현대문학의 거목인 노신은 ‘길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직을 준비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아 결국 그 꿈에서 멀어진 것. 찬찬히 돌이켜 보면 참 야물지 못했다 싶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그렇게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그래서 뜻밖의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되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새기며 아직도 고시 낙방의 아픔에서 헤매고 있을 어떤 젊음에게 다음 구절을 읽어주고 싶다.          


안경 줄을 배꼽까지 내려뜨린 할아버지가      

옆자리의 진주 목걸이를 한 할머니에게 나이를 묻는다.      

예순둘이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감탄한다.     

"좋은 나이요. 나는 예순일곱인데 내가      

당신 나이라면 못할 게 없을 거요."     

- 은희경의 <서른 살의 강> '연미와 유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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