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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경 Jul 10. 2024

나는 원조 "고딩엄빠"다.(9)

#09.

“대학엘 가야겠어.”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출판사에서 월말의 마감을 끝내고, 회식이 있다며 늦은 날이었다.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해보니,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남편이 대학에 다닌다고 해서 우리의 생활이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남편은 대학에 가겠다고 시부모님께 얘기했다. 시댁에서는 잘했다, 못했다 말이 없었다. 잘 생각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말씀드린 것은 아니었다. 학비를 지원받으려면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다.



  남편은 그때부터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빠르면 일 년 안에도 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을 수도 있었다.

  남편은 불량스럽게 학교생활을 했지만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결석을 밥 먹듯 하면서도 성적은 항상 중상위권을 웃돌았다.


 남편은 계획한 대로 대학에 합격을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남편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억지로 어른처럼 보이지 않아도 되었다. 제 나이에 맞는 옷을 걸치고, 더 이상 과장되게 행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있을 곳에 있는 듯이 또래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기를 돌보면서 주변의 아주머니들을 따라서 부업을 하고 있었다.

전기 코드를 잇고, 속옷에 다는 리본을 만들고, 쇼핑백을 접기도 하고, 전선고정 클립에 못을 박고, 야구공을 만들고, 수출용 조끼를 뜨고, 액세서리의 구슬을 꿰고… 아기를 데리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열심히 하면 한 달 방세를 내고도 남았다. 남편에게 차비를 줘야 했고 점심값도 있어야 했다. 등록금과 책값은 시댁에서 대주었지만 그 외의 생활비는 없었다.  

 나는 밤을 새기도 하고 끼니도 걸러가며 악착같이 일했다.


  남편은 친구들과 만나 과제를 한다거나, 약속이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늦는 날이 잦았다. 더러는 외박을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부업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반가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세탁하기 위해 옷을 정리하던 중, 남편의 외투주머니에서 뭔가가 만져졌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냈다. 편지봉투였다. 색깔이 있는, 평범한 편지봉투는 아니었다.

    

  가슴이 뛰고 손이 덜덜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 잘 접힌 편지지를 펼쳤다.


  깨알처럼 써진, 누가보아도 여자의 글씨체였다. 빼곡하게 써진 내용엔, 남편의 이름을 불러가며 사랑한다는 여자의 마음이 적혀 있었다. 만났을 때의 기분과 앞으로 어떠한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너의 지윤이가‘라는 데까지 이르렀을 때,

일순간에 주변의 모든 배경이 한꺼번에 삭제된 듯했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창자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머리끝으로 치솟아 올랐다.

솟아오른 피는, 눈물이 되어 끊임없이 흘렀다.    

 

 우리의 아기가 세 살이었다.

나는 그 삼 년을 삼십 년은 족히 되는 듯이 살았다.


  시부모에게서 들었던 무수한 폭언과 욕설과 설움, 생활에서 겪어나가야 했던 지독한 가난, 이유 없이 받아야 했던 주변의 따가운 눈총, 만져보지도 못한 내 꿈.

그리고 배신감.

그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내 가슴속 밑바닥에서 한꺼번에 들고일어났다.

     

  그때 남편이 그의 형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가 있어서 미리 오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남편과 그의 형은 내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았다. 이미 나는 거의 미친 여자의 행색이었다. 몸에서 일어나는 화의 불길을 도저히 끌 수가 없어서 부엌으로 달려가 옷을 입은 채로 찬물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머리는 산발이 된 채 온몸은 젖어 있고, 너무 울어서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 와중에 남편이 전날 입었던 외투를 찾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편지를 그 옷 안주머니에 원래대로 놓아두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주머니에 만져지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다시 집을 나가버렸다.

나는 뒤돌아서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내 속에 너무나 큰 분노가 끓고 있어서 말이, 목을 넘어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다.


   그날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남편이 다니는 학교로 찾아갔다. 학년은 다르지만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친구는 남편의 오랜 친구였다. 그렇기에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다.

나는 온 캠퍼스를 다 뒤졌다. 그때는 누군가를 만나려면 직접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드디어  나는 그를 찾아냈다. 불쑥 아기의 손을 잡고 나타난 나를 보고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사람들 많은 곳에 아기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꾸만 힐끔거리며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였다.


 “너, 알고 있었지?”

 내가 다짜고짜 물었다.

 “뭘?”

 남편의 친구가 당황하는 기색으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나 속일 생각하지 마. 지윤이라는 여자!”

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그는 놀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어?”

 “세상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해? 내가 언제까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너희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러면서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웃고 떠든 거야? 니네가 더 나쁜 놈들이야. 친구가 나쁜 길로 가는 거 같으면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우리 아기하고 나를 알면서 어떻게? “

나는 친구에게 마구 퍼부었다. 화풀이를 엉뚱한 곳에 하고 있었다.

“미안 해. 나도 최근에 알았어.”

친구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년이야? 어떤 년이 멀쩡히 처자식 있는 사람을 사랑 어쩌고 하면서 꼬드기는 거야?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나, 시내 한복판에서 휘발유 뿌리고, 확 죽어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친구가 보기에도 내 눈에 서린 독기가 보였을 것이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일 기세로도 보였을 것이다.

 남편의 친구는 하루만 시간을 주면 반드시 알아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진정하라고 나는 다독였다.


 다음날 나는 그 여자의 집 주소를 전해 받았다.   

   

  그 여자의 집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심에서 변두리로 버스를 타고 가서, 30분 정도를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가을이었지만 햇볕이 따가웠다. 흙길은 말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일었다. 나는 아기를 업고 걸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찾아갔는데 여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여자가 있다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어떤 여자일까, 나보다는 훨씬 나은 여자겠지, 그럴 거야, 그러니까 남편의 관심을 끌었겠지, 괜히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대가 센 여자라서 오히려 망신이나 당하고 오는 건 아닐까? 그냥 돌아갈까?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남편의 외도의 상대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거 같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던 거 같다.


 시골이라서 주소만으로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 따가운 볕을 피해 잠시 농사일을 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여자의 주소를 보여주며 어디인지를 물었다.

 한가하고 무료한 시골에 잠시의 심심풀이라도 생겼다는 듯이, 주소를 보며, 서로 그 집 얘기를 했다. 엄마가 암으로 아프다느니, 고등학교를 겨우 나왔는데 빈둥거린다느니, 집안 형편이 어렵다느니, 아버지도 없는데 오빠마저 집을 나가 소식이 없다느니,

나는 그 집에 도착도 전에 그 여자의 집안 내력까지 알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왕 바람을 피울 거면 좀 괜찮은 집 여자하고나 피든가. 네 짐도 버거울 텐데 그 여자 짐까지 거들어 주려고 한 거냐?’  

   

  그 여자의 집은 그 동네에서 제일 끝집이었다. 내가 대문도 없는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마당가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보였다. 낯선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고개를 돌리는데,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다. 몸은 바짝 말라 있었고 얼굴색이 흑색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검은색과는 달랐다.

 그런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나와 내 손을 잡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몸의 움직임이 느렸고 목소리에 물기가 없었다.

  

  나는, 지윤이라는 여자를 찾아왔노라고 말했다. 아주머니가 나와 아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잠시 후, 여자는 마루 쪽을 바라보며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 아주머니가 마루 쪽을 바라보며 부른 이름은 내가 알고 있는 지윤이라는 이름과는 다른 이름이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지윤’과는 거리가 먼 이름이었다.


  구석 쪽 방문이 열리고 여자가 부스스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여자는 자고 있었는지 헝클어진 머리에, 까무잡잡하고 야윈 얼굴에 박힌 작은 눈을 겨우 뜨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는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와 봐, 아무래도 널 찾아온 것 같다.”

 아주머니의 말에 여자가 마루로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목이 잔뜩 늘어난 헐렁한 흰 티에 낡은 파자마바람의 여자는 키가 컸다. 여자에게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가을바람을 타고 내게까지 느껴졌다.


 “혹시, 지윤이라는 사람인가요?”

 최대한 냉정하고 침착하려 애쓰며 내가 물었다.

 “네, 그런데 누구세요?”

 마루 끝에 앉으며 겨우 입을 연 여자의 치아가 아주 검었다.

 “내가 누군지 짐작이 안 가요?”

 내가 여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자가 나와 아기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우리 아기의 얼굴은 남편을 쏙 빼닮았다. 남편을 아는 사람은 우리 아기의 얼굴을 보면 단박에 남편을 떠올렸다. 지나가다가도 멈춰 서서 혹시, 하고 남편의 이름을 대며, 그 사람 모르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우리 아기는 남편의 판박이였다.

     

  나는 여자의 동공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 그 사람 아내 되는 사람이에요. 우리 아기고요.”

 내가 아기의 손을 다잡아 쥐고 ‘우리’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남편은 댁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내가 빨아 준 옷을 입고 내가 해준 밥을 먹고 가죠. 댁을 만나고 돌아서서, 나와 우리 아기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거고요. 그런 거 생각하면 서글프지 않던가요? "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난다는 옛말이 있어요. 댁도 언젠가는 결혼을 할 텐데, 나 같은 일 안 겪을 거라고 장담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는 그 집을 나섰다. 아기의 손을 꼭 잡고.


 시골길을 30여 분 다시 걸어 나오면서 나는 온몸에 들어가 있던 긴장이 풀렸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무 살이었다.

 너무나도 푸르고 싱그러우며 아름답기까지 한 스무 살.

 숫자만으로도 희망이 되는 스무 살.


  그 스무 살에 나는 남편과 바람난 여자를 만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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