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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내 창가에서 노래할 때,(11)

#11

by 차이경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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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짧은 달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을 때는 마음도 몸도 바빠지는 시기였다.

어른들은 언 땅이 녹기 시작하는 이때에 농사철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저장해 놨던 고구마를 미리 손보기도 했고, 겨우내 묵혀두었던 밭에 쌓아두었던 옥수수 대궁이나 논의 볏짚도 거둬들였다. 거둬들인 볏짚과 옥수수 대궁은 작두로 썰어서 소의 여물이 될 거였다.


들에 풀이 나기 전, 콩대나 볏짚, 옥수수 대궁을 큰 솥에 넣고 쌀겨 등을 넣고 끓여서 소에게 먹였다. 소가 있는 집에서는 여물을 끓이는 특이한 냄새가 났다.


밭둑가나 논둑에 마른 풀도 태웠다. 동네의 여기저기에서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고 검은 연기가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리밟기도 해야 했다.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땅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을 뚫고 올라온 보리가 심긴 밭은 온통 녹색 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리밭으로 나가서 줄 맞춰 서서 웃자란 보리를 발로 꾹꾹 밟으며 앞으로 나갔다. 너른 보리밭에서 뛰고 싶었지만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보리밟기는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봄내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엄마들은 묵은 빨래를 했고 이불을 뜯어서 솜을 틀기도 했다. 겨우내 온 식구들의 포근한 잠자리가 되어 주었던 이불의 솜은 대부분 뭉쳐버렸다.


 그때의 이불의 솜은 목화솜이었다. 목화솜은 여러 번 다시 틀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엄마들은 홑청을 뜯어 빨고 속에 있는 솜은 솜틀집으로 가져갔다. 이맘때면 솜틀집 앞엔 각 집에서 들고 온 솜뭉치들이 길게 줄을 지어있었다.


 솜틀집엔 날리는 솜으로 인해 벽, 천정할 거 없이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발로 솜틀기계를 쉴 새 없이 밟아 돌렸고 그때마다 먼지는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솜틀집 안은 뿌옇게 보였고 솜틀집 아저씨의 머리카락이나 옷에도 하얗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솜틀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모두가 큰 소리로 목청껏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바쁜 엄마들을 대신해서 솜뭉치 앞에 줄을 서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찾아온 솜을 엄마들이 넓은 마루나 안방에 넓게 펼쳐 놓고 세탁한 홑청을 씌웠다. 다시 시침질 한 이불은 온 가족의 저녁 잠자리가 될 것이었다. 엄마들이 이불을 꿰맬 때 이불 위로 뛰어올라 뒹굴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씩 맞기도 했다.

  봄 방학이 끝나가고 새 학년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봄 방학은 2월 마지막 주에 끝이 났다.

지금처럼 3월에 개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3월 1일엔 삼일절 기념식을 하기 위해 학교에도 갔다.


 새 년에 올라가 쓸 책을 미리 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골목에서 함께 놀던 언니오빠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코흘리개 어린애들 몇이 남았다. 그동안 친구로만 알고 있었던 금자가 내게 말했다.

올해 자기는 학교에 간다고.


나는 그때부터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학교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넌, 아직 나이가 어려서 학교에 못 가. 내년이 되어야 가는 거야.”

“갈래. 나도 학교에 갈래. 나도 학교에 보내 줘. 금자는 학교에 간대.”

“금자는 여덟 살이니까 가는 거지.”

“나도 보내 줘. 나도 갈 거야.나도 여덟 살하면 되잖아.”

하루 종일 울며 떼를 쓰는 나를 엄마가 어쩌지 못하고,

“알았어. 너도 학교에 보내 줄게. 그만 울어.”

 나는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울음을 그쳤고 내 또래들에게 자랑했다.

     

언니오빠들이 학교에서 받아 온 책은 새 책이 아니었다. 위로 진급해 올라간 선배들이 한 학기 동안 쓰던 책을 물려받았기에 헌책이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겉표지를 종이로 쌌다.


 지나 간 해의 달력을 뜯어서 책의 크기에 맞게 가위로 잘랐다. 달력의 하얀 뒷면이 책의 바깥으로 오게 한 뒤 책에 맞게 접었다. 그리고 책의 제목과 학년과 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칼로 연필도 깎았다.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나 오빠들이 쓰고 남은 볼펜에 몽당연필을 끼웠다. 그것으로 새 학년의 준비는 끝이었다. 나는 준비하는 언니오빠들 곁에 앉아서 신기하고 부러운 눈으로 지켜봤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는 대부분 책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대신 보자기에 책과 공책을 싼 뒤 둘둘 말아서 허리나 어깨에 묶었다. 움직일 때마다 철로 된 필통에서 연필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학교에 가면 대부분의 연필은 심이 부러져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좋은 재질의 연필이 아니었다. 나무도 심도 너무도 약했다.


 도시락까지 들어가면 하교할 때는 더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밥숟가락이 철로 된 빈 도시락 안에서 제멋대로 요동을 쳤기 때문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우리를 불렀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빵을 꺼내서 조금씩 잘라서 모두에게 나눠 주었다. 그 집엔 여덟 명의 형제들이 있었다. 빵을 나눠준 언니는 아마 두 번 째나 세 번째 형제였을 것이다. 그 밑으로 두세 살의 터울로 형제들이 있었다.


 그날 아마도 엄마가 어디를 가면서 그 집에 나를 맡겼던 것 같다. 내가 학교 들어가 전이었다. 그 집 언니는 자기의 형제들과 똑같은 크기의 빵을 잘라서 내게도 주었다. 검은 빵이었다. 초코색이었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단맛이 거의 없는 담백한 맛이었는데 아주 고소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것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양지바른 곳에 사이좋게 앉아 그 빵을 먹었다.

그 빵을 먹고 난 뒤 나는 더욱 학교라는 곳엘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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