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튼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예약해 둔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 체크인을 하러 갔다. 4박 5일을 지낼 호텔이라 가능한 좋은 방을 배정받고 짐도 풀러 놓고 싶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이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한 뒤 방을 내주었는데 2층에 있는 방이었다.
30층이 넘는 호텔에서 2층방이라... 그것도 거의 체크인 시간 맞춰 갔는데...? 분명히 더 좋은 층에 더 괜찮은 방이 있을 텐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도 종종 느끼던 것이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나이스했고 차별의 낌새 따위 느끼지 못했지만, 가끔 이렇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들도 꽤 있었다.
비행기 좌석지정을 안 하면 거의 매번 제일 뒷자석, 호텔 체크인을 하면 뭔가 애매한 위치에 있는 방. 어느 레스토랑에서 햇빛이 눈부시길래 웨이터에게 블라인드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안된다고 대답한 그는 다른 백인 가족이 같은 요구를 하자 들어주었지. 한 호텔 조식 뷔페의 웨이터는 내 앞에 서 있던 백인 가족의 아이를 안고 "쏘 큐트!"를 연발하며 스몰 토크를 하느라 나를 한참 기다리게 하더니, 내 차례가 되자 그 흔한 "하와유?" 한 마디 없이 "룸 넘버?"라고 말했고, 내가 버벅거리자 차가운 표정을 지었더랬다.
그저 운이 나빴던 것인지, 뭔가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명백한 차별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차별이라면 그 이유가 내가 영어를 못해서인지, 동양인 소수자라서인지, 아니면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라서인지도 나는 분별할 수 없다.
어쨌거나 그들의 눈에 나는 차별을 당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거나 따박따박 항의할 능력이 없는 만만한 고객인 것이다. 왜 나한테만 이상한 좌석, 이상한 방을 주냐고, 왜 내 요구사항을 무시하냐고, 왜 나한테는 '하와유' 안 하냐고 항의할 수도 없고, 항의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유가 다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 이유를 속사포처럼 빠른 영어로 다다다 쏘아대듯 말하면 나는 알아들을 재간이 없다. 그저 "예스, 예스." 하고 물러설 수밖에.
그러니 묘한 기분이 드는 일이 생겨도 따져 묻기보다는 '이유가 있겠지. 차별은 아닐 거야.'라고 나를 다독이며 일상을, 여행을 이어가곤 했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내 마음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간단치 않다. 맨하튼은 사방에 고층건물이 꽉꽉 들어찬 곳이다. 이런 곳에 있는 호텔의 2층방이란 아마도 한국의 반지하 고시원 같을 것이다. 4박 5일 동안 거의 1,500불을 쓰면서 그런 곳에서 지낼 수는 없다. 룸키를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맘먹고 다시 프런트로 발길을 돌려, 다른 방이 있으면 바꿔달라고 말했다. 담당자는 오늘은 안 되고 내일 아침에 와서 다시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일단 물러났다.
실제로 방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더욱 심했다. 한낮인데도 빛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 것이 꼭 지하실 같았다. 하룻밤을 보낸 후 아침 일찍 프런트로 달려가서 사정을 말했다. 방이 너무 어두워서 힘들다고 하소연도 보탰다. 다행히 담당자는 방을 바꿔줄 수 있단다. 휴우, 다행이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현재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의 상태에 대해 빠르고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고, 나는 멘붕에 빠졌다. 이 사람이 뭐라는 거지? 대충 듣기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 같은데 둘 중 어떤 게 나은지 모르겠다.
한참 이어지는 설명을 듣다가 떠듬떠듬 질문을 했고, 못 알아듣는 것은 "파든(pardon)?"을 몇 차례 하며 되묻던 중, 그는 한.숨.을 쉬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멘붕에 빠졌다. 지금 호텔리어가 고객한테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한숨 쉬고 짜증 낸 거야?? 명색이 호텔리어가? 여차저차 방을 바꾸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불쾌한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뉴욕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동하던 중 한 레스토랑에 들렀다. 주문을 하는데 또 빠르게 속사포처럼 말하는 웨이터를 만나는 바람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손짓발짓 하면서 진땀을 흘리는 나를 아이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영어를 못하는 엄마를 답답해했고, 부끄러워했다.
이 역시 자주 겪던 일이었다. 아이는 내가 미국인들과 어눌한 영어로 대화하면 그게 그렇게도 싫은 듯했다. "엄마, 발음 너무 이상해."라고 지적하거나 "엄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라고 훈수를 두었으며, 어떤 때는 "엄마, 그만하고 가자."라고 나를 잡아끌기도 했다. 가끔 집에 놀러 오는 아이 친구들에게 영어로 인사라도 건넬라치면 "으아! 엄마, 영어 쓰지 마!" 하면서 부끄러워했다. 앞서 호텔에서의 경험조차, 아이는 우리를 고객으로서 존중하지 않은 그 호텔리어의 잘못이 아니라, 영어를 못하는 우리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솔직히 나는 아이가 그럴 때 딱히 화가 나거나 속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인이다. 영어는 우리의 모국어도, 공용어도 아니다. 그러므로 영어를 못하는 사실이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그저 매우 불편한 일인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그동안 영어를 못 하는 사실이 한 번도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다만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 앞에서 콩글리쉬를 구사하는 것이 좀 민망했던 적은 있지만. ^^;) 그러므로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아이가 부끄러워한다고 해서 그게 내 자존감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그 마음이 궁금할 뿐이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 아니 어른들조차 한국 사람들은 영어 못하는 것을 은연중에 부끄러워한다. 왜일까?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어를 못하거나 중국에 가서 중국어를 못하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한국인은 보지 못했기에, 아마도 이것은 친미 사대주의 사상에서 나온 감정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사람 특유의 영어울렁증이거나. 영어점수가 곧 수능과 내신 등급으로 연결되고, 학생으로서의 나의 가치가 매겨지던 시절을 통과한 사람 특유의 주눅 든 마음.
어쨌거나 나는 아이가 영어에 대해 필요 이상의 두려움이나 경외감을 갖지 않기를 바라기에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소망아, 영어를 못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그냥 불편한 것일 뿐이야."라고 여러 번 말해왔지만, 사춘기 초입 아이에게 그런 말은 쇠 귀의 경 읽기나 마찬가지. 이번에도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뉴욕 여행을 마치고 캐나다로 넘어갔다. 몬트리올을 가는 도중 주유소에 들렀는데 차가 너무 붐볐다. 차를 빼려고 돌아 나오는데 우리와 마주 보는 위치에서 다른 차가 한 대 들어왔다.
우리가 먼저 나가려고 움직이고 있었고, 그 차는 역방향으로 오고 있었으며, 두 차가 교행할 공간이 나지 않아서 누가 봐도 그 차는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우리 쪽으로 밀고 들어왔고, 그 바람에 우리는 멈춰 섰는데도 그 차는 계속 전진하다가 결국 부~~~~~욱 하고 우리 차를 세차게 긁은 뒤 멈추었다.
'아아, 해외에서 차 사고라니 이 무슨 골치 아픈 상황이야.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내렸다. 나는 당연히 그 차의 운전자도 내려서 우리에게 사과를 하고 사고 수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퀘벡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캐나다인으로 추정되는 백인 남자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우리 차를 흘긋 보더니 창문을 닫고 다시 출발하려고 했다.
나는 너무 당황했다. 언뜻 보기에도 우리 차의 흠집은 길이가 거의 2, 30cm 정도 되어 보였다. 남의 차를 이렇게 긁어놓고 그냥 간다고? 갑자기 이 남자가 '영어 못하는 아시아인 여자 운전자'를 보고 무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그 순간 분노가 폭발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울분이 함께 터진 듯했다.
나는 "What are you doing now?!!!!!"라고 외치며 그 남자를 쫓아갔다. 그 남자는 내가 서슬이 퍼래서 쫓아오자 깜짝 놀라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우리 차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손에 침을 발라서 흠집에 대고 막 문질러서 지우려고 하는 택도 없는 시도를 했다;;; 흠집이 계속 안 지워지자 그는 내게 "It's not a big deal."이라고 말하면서 컴파운드 어쩌고 저쩌고 했다. 아마 컴파운드를 쓰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화를 내면서 "It's a big deal in Korea! Call your car insurance company! Give me your phone number!"하고 속사포처럼 말했다.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어가 방언 터지듯 술술 나와서 나도 깜짝 놀랐다. 사람이 위급상황에서는 괴력을 발휘하게 되나 보다.
그 사람의 차 번호를 찍고, 폰 번호를 따고, 그의 보험회사 연락처까지 받고 난 다음에 나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아유, 시원해라!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네! 그러고는 '캐나다에서 이 정도 일은 진짜 big deal이 아니면 어쩌지? 내가 너무 오바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차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어쩐지 자신감 상승.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가볍게 스몰 토크도 하고,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도 이것저것 묻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이도 나의 달라진 태도를 의식하고, 나를 보는 시선도 조금 바뀐 듯했다. 적어도 전처럼 '영어 못하는 무능한 엄마'를 한심하게 여기는 느낌은 사그라들었다.
급기야 아이는 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미국인과 농담을 하면서 웃자 옆에 와서 조심스레 소곤거렸다. "엄마, 엄마가 뭐라고 했길래 저 사람이 웃은 거야?" 아이의 눈빛에서 약간의 존경심이 느껴지자 기회는 이때다 싶어, 나는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설명하면서 덧붙였다.
소망아, 우리는 한국인이라,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누가 너를 어떤 이유로든 차별한다면 그건 그 사람 잘못이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네가 주눅 들 필요 없어.
뉴욕 호텔에서도 그 호텔리어가 잘못한 거야. 뉴욕은 전 세계인들이 오는 관광객이라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 사람이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설명했어야 하는 거야. 우리가 영어를 못 한다고 부당한 대우를 참을 필요는 없어. (나는 실제로 그 뒤에 같은 내용으로 호텔에 항의메일을 보냈고, 아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번만은 아이 귀에도 약간 그 말이 들린 듯했다.
아이야, 네가 언제 어디서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
(그리고 영어 못하면 살기가 너무 불편하니까 공부는 쫌 하자? 엄마도 이제 시작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