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날이 밝아온다. 파도소리가 시원하다. 그렇다면 내가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지.
어제 근처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 바닷가를 걷다가 한 청년을 보았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는데도 모래사장에서 웃통을 벗어젖히고 멋진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내며 달리고 있었다(여행 오길 잘했다, 밍이야. 그치?). 그 자유로움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지인의 블로그에서 본 단어, '운동복'. 몇 년 전 다이어트에 성공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소위 '손나은 레깅스'라 불리는 아디다스 삼선 레깅스를 샀지만, 몇 번 입지 못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의식해서였다.
사십 대 아줌마가 주책이라고 하지 않을까, (살은 뺐다고 하나 원래 하체부종이 심한 몸인 데다 종아리도 휘어서) 저 다리로 레깅스가 웬 말이냐고 하지 않을까. 운동하려고 어두컴컴한 밤에 긴 티셔츠 밑에 슬쩍 입고 나서면 누가 볼세라 열나게 뛰다가 집에 오곤 했다.
- 바보 같으니. 나를 누가 본다고.
나를 사랑하는 여행을 떠나면서 캐리어 한 켠에 챙겨 온 레깅스에 탱크탑을 받쳐 입고 거울을 본다. 나쁘지 않은데? 갑자기 억울하다. 내가 애써서 만든 몸매 꽁꽁 싸매고 다니려고 몇 달을 현미밥에 풀떼기만 먹은 줄 알아? 아니 그보다, 나는 언제, 어떤 모습이어도 예뻤는데, 우리 모두 그러한데, 그걸 나만 몰랐구나.
자유롭고 싶어서 썬크림도 바르지 않은 채 뒷주머니에 카드키를 꼽고 방을 나선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맨발로 달려본다. 맨발로 달리면 관절에 안 좋은데. 야 쫌! 선수처럼 뛸 것도 아니잖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해.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맨발로 달리다 서다, 파도에 발을 담갔다 뺐다 하니 애월에 살던 효리가 부럽지 않다. 갑자기 요가를 하고 싶어 진다. 내일 아침에는 돗자리를 챙겨 와야겠다. 그보다 브라탑을 입고 (내게 복근은 없으니) 복부라도 드러내고 달려볼까?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