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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Dec 21. 2020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겨울밤 곰삭은 식혜

나의 외갓집은 충청도의 어느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도시에서 벗어나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달리다 보면 산과 밭으로 둘러싸인 통나무집 한 채가 나오는데, 어렸을 적엔 부모님을 따라 자주 놀러 가곤 했었다. 그곳에 가면 또래 사촌들과 하루 종일 놀러 다니거나, 어른들의 밭일을 돕거나, 집 지키는 멍멍이를 잔뜩 예뻐해 주는 것이 나의 주된 일과였다.


시골에서 있었던 기억들의 중심에는 외할머니가 계신다. 그녀는 대가족의 중심이었다. 그녀는 새벽부터 밤까지 굽은 등을 이끌고 집 안팎의 일들을 처리하시곤 하셨는데, 나는 그녀가 잠시라도 쉬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더 놀라운 건 그 고된 일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엔 늘 미소가 배어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마치 깨끗한 공기를 머금은 봄 햇살처럼 순하게 맑았다. 그녀가 웃는 것을 볼 때면 당시 어른들에게 낯을 많이 가렸던 나의 경계심도 속절없이 녹아내리곤 했었다.






그곳에서 있었던 어느 겨울밤의 이야기다.


그날따라 나는 아주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당연히 모두가 잠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 시간, 외할머니께서 홀로 화롯가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늘 끊임없이 움직이던 그녀의 정적인 모습을 목격한 첫 순간이었다. 고요한 할머니의 얼굴 위로 그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은 어른의 얼굴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주름 사이로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삶의 깊은 그늘이 배어 나왔다. 나는 처음 보는 할머니의 낯선 모습에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다. 머뭇대던 찰나,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화롯불에 손 좀 쬐야."



그녀와의 독대는 그 날이 처음이었다. 나는 괜한 어색함에 미적미적 발걸음을 옮겼다. 밤 새 얼마 남지 않은 불씨들이 옹알대던 화로 옆엔 두꺼운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에게 종교가 있었다니, 당시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던 나는 내심 반가움을 느끼며 그 옆에 앉았다.


깜깜한 창 밖으로 겨울바람이 서성이는 소리가 났다. 우린 별다른 대화를 주고받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새벽 동안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바라보다가, 화롯불에 손을 쬐었다가, 성경책을 읽다가를 반복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슬 동이 터오던 때, 정적을 깨고 그녀가 식혜를 마시지 않겠냐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녀는 국자와 그릇을 챙겨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 위 깔린 자갈 위로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항아리 뚜껑이 젖혀지는 소리, 무언가 캉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그녀가 온몸에 찬 바람을 품고 돌아왔다. 건네받은 식혜 그릇엔 살얼음들이 바삭거리며 부딪히고 있었다. 직접 만드신 그 식혜는 시중에 파는 것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새콤하고 묵직한 맛이 났다. 곰삭은 식혜다. 요구르트 맛이 난다며 꼴깍꼴깍 한 잔을 다 들이켜고 나니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먹었어요 할머니. 비워진 그릇을 보자 찬 바람을 맞아 발갛게 오른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그 기억의 마지막 장면이다.






살아간다는 건 뭘까.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감당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 새벽 내내 초연히 성경책을 읽던 그녀를 떠올린다. 평생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면 생의 바탕색은 분명 외로움 이리라.


그동안 홀로 설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런 스스로를 감당하기 버거울 때면 종종 그늘에 잠식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혼자 고군분투하다 보면 심적으로 고립되기도 쉬웠는데,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다. 함께하는 삶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영영 세상과 유리되는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날 때면 주변 사람들은 귀신같이 나를 불러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진 않았다. 으레 그러하듯 밥을 먹고, 대화를 하며 웃고 떠들거나 그 날 새벽처럼 아무 말 없이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놀랍게도 혼자 아등바등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워져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쌓이니 조금씩 보이는 것이 있다. 혼자 모든 걸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점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젠 조금씩 그들처럼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호의를 베풀 여유가 된다면 더욱 좋겠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제 그늘로 돌아왔을 때 다들 스스로를 견디는 것이 조금이라도 덜 버거이 느껴질 수 있다면, 그렇게 어른이 된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덜 외로이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정말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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