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여기서 성물 판매하시는 거예요? 신자분들은 주로 뭘 사 가세요?”
예전에 성당 성물방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흔쯤의 신부님이 성물방에 들어오셨다.
“네. 여러 가지 성물들을 골고루 사 가세요. 세례식 때는 성모상이나 십자고상도 많이들 사 가시고, 평소에는 묵주 팔찌도 많이들 보시고요.”
“오오, 그렇구나. 그럼 지금 자매님은 봉사하시는 거예요?”
“네. 시간 정해 놓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봉사하고 있어요.”
“아, 그럼 자매님은 자녀가 어떻게 되세요? 몇 학년?”
신부님에게도 나는 당연히 자녀가 있음 직한 자매님이다.
“네? 아, 신부님. 저는 결혼 안 했어요.”
“앗. 죄송해요.”
신부님이 적잖이 당황한 눈빛을 보이신다. 내가 결혼 안 한 것에 신부님이 죄송해할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아녀요. 괜찮아요. 저도 종종 듣는 말이에요.”
내가 손사래를 친다. 신부님은 한 2초간 멈칫하시더니 갑자기 활짝 웃으시며 다음 말을 이어 가신다.
“저도 사실 자녀 없어요. 결혼 안 했거든요. 훗.”
신부님과 나는 결혼 안 한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눈빛을 나눈다. ‘결혼’을 기준으로 사람을 둘로 나눈다면 나도 그 신부님도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 ‘정상’은 애초에 누가 정한 것인가. 혹시 ‘정상’이라는 그림은 우리가, 혹은 내가 그린 허상이 아닐까?
어떤 허상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쉽게 재단해 버리기도 한다. 다음은 그와 같은 사례.
“아니, 결혼 전부터 그렇게 채소를 잘 먹었어요?”
도서관 수업 후 뒤풀이 시간이었다. 신나게 나물을 먹고 있는데 옆에 계신 분이 나의 ‘나물 식성’에 감탄하며 질문하신다.
“네?”
‘결혼 전후’로 인생을 크게 나눠야만 할 것 같은 질문을 듣는데, 문득 ‘나물을 먹는 나’와 ‘결혼을 한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수강생분의 질문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없는데 다만 전제는 있다. ‘늙기’의 정도로 구분했을 때 나 정도의 외양이면 이미 결혼을 하고도 남았어야 한다는 전제였다.
“아니요. (첫째로) 결혼은 안 했고요. 아니요. (둘째로) 채소는 고3 때까지 싫어하다가 문득 잘 먹게 됐어요. 갑자기 맛있어졌거든요.”
내 친구는 한 번 보고 말 사람이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와 같은 개인 정보를 묻길래 이렇게 말해 버렸다고 한다.
“저 이혼했어요.”
어우,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그때 이렇게 반응했다. 사실이 아닌데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느냐고 친구를 질책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일일이 모든 사람의 스쳐 가는 질문들에 꼼꼼히 대꾸를 하며 비혼이 된 배경과 비혼의 재미를 내보일 필요도, 그와 반대로 비혼의 고초 등에 관해 난상 토론까지 벌일 일도 아닌 듯하다.
그건 그냥 각자의 삶일 뿐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비혼’이라는 말이 세상에 등장했다. 조금 더 주체적으로 결혼을 바라보려는 시각이라고 한다. ‘미혼’은 ‘아직’ 혼인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지만 ‘비혼’은 혼인하지 않은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한다. 누군가 나에게 “미혼이세요?”라고 물으면 기혼자가 아니므로 나는 ‘미혼’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미혼과 비혼의 어느 경계쯤에 내가 서 있는지 나도 나를 잘 모른다. 본격적으로 ‘나 홀로’의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나는 시간을 먹을수록, 세월을 입을수록 내가 ‘비혼’과 ‘독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나’라는 사례만으로는 비혼을 통칭할 수 없다.
하나의 선명한 색깔만이 색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듯, 비혼의 스펙트럼도 매우 다채롭게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을 것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산다. 비혼도 비혼의 삶을 산다. 그리고 내 영혼도 내 영혼으로서의 삶을 산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그냥 ‘나’다. 우리도 그냥 그 자체로 ‘우리’다.
참, 아까 자녀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죠?
“자녀는 없는데 ‘나 자신’은 있어요.”
‘나 하나’를 최선을 다해 키우는 중이랍니다.
(가끔은 여러분의 ‘자녀’처럼 되게~ 말을 안 들어서 문제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