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니, 저게 다 뭐야?
조카: 이모, 이게 뭐야?
조카 어미(내 동생): 어? 이모 응원봉 샀나 보다. 얼마 주고 산 거야?
나: 쉿!
눈치 빠른 동생은 입을 다문다.
요즘 난 남자를 사랑할 줄은 모르는데 남자 연예인‘은’ 사랑할 줄 안다. 유난한 팬 활동은 안 하지만 마음만은 유난하고 화려해서 종종 두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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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구가 팬카페에 뜨면 아무도 모르게 해당 지하철역으로 잠행을 떠난다. 거기서 내 남자, 아니지, 내 남자 연예인의 영상이 뜰 때까지 오래고 기다린다. (촬영은 해 놓고 집에 오면 안 보지만.)
“아니, 원숭이 닮았구먼, 뭐가 좋다고 그러는 거여?”
이웃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나의 방에 들어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책장에 ‘전시’되어 있던 나의 ‘전설’은 졸지에 동물원에 전시된 원숭이 취급을 받았다. (원숭이한테 미안하지만) 말도 안 된다! 원숭이가 저렇게 노래를 잘할 수 있단 말인가! 중2병을 알게 모르게 앓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욱하며 눈물 바람을 하였더랬다. (그게 울 일이냐며 철 좀 들라는 말도 살뜰히 챙겨 들었다.)
그렇게 철없이 자라서 아직도 ‘철’분이 모자란 탓인지, 여전히 나는 지금도 사부작사부작 ‘입덕일지’를 쓰고 내 ‘최애’의 공연 소식에 설레고, 마침내 꿈(?)을 이루어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이 혼재되는 요즘의 시대, 혹자들은 이런 나를 보고 ‘현실 감각’을 들먹일 수도 있겠다. 진짜 사랑을 해야지, 가짜 사랑을 하면 어쩌냐는 걱정을 얹으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충실할 가정이 없으니 자유로워 그러는 것 아니겠냐고도 물을 수도 있겠다. 그 혹자들 가운데 선두 주자로 가장 앞자리에 설 사람은 아마도 우리 어무니, 아부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러던 우리 어무니가 어느 날.
“아니, 유○ 엄마, 이게 다 뭐야?”
“몰랐어? 나 유재석 좋아했잖아.”
가족사진이 있는 액자 밑에 자그마하게 유재석 사진이 증명사진 크기로 껴 있었다.
“얘는 또 누구고?”
“아, 요즘 유재석에서 좀 바뀌었거든. 이젠 박효신 좋아해. 목소리가 좋~드라고.”
가정이 있는 유○ 엄마는 우리 엄마의 동네 친구분이다. 최애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그새 최애가 바뀌었다고 선언하셨단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일은 가정이 있건 없건, 그 가정이 자기 자신 하나뿐이건 아니건, 숨길 일도 뒤에 숨어서 사부작거릴 일도 아니다. 여자가 남자를, 남자가 여자를, 혹은 동성이 동성을 사랑한다고 한들, 그 모든 것이 꼭 숨겨야 할 일은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마음만 소녀 혹은 마음만 소년’인 뭇사람들도 충분히 철이 덜 들어 보이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짝을 지어 나란히 결혼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어깃장을 내려는 것도 아니요, ‘연애 세포’가 다 말라 버려 사람을 영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나의 ‘철’을 알아차린 것뿐이다.
철: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
철: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
‘철’는 다양한 철이 있다. 사리를 분별하는 힘만이 ‘철’의 전부는 아니다. 설령 사리를 판단하는 능력이 날카롭지 아니하고 좀 무딘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가장 즐거울 수 있는 그 ‘때’를, 즉 그 ‘철(계절)’을 놓치지 않는 능력만은 탁월할 수도 있는 법이다.
자, 그러니 이제 나 역시 더는 ‘쉿’ 하고 뒤로 숨지 말고,
“아니, 저게 다 뭐야?”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야 할 것이다.
“네. 저게 다 저입니다. 저의 분신들이에요. 제가 지금 살아 있다는 흔적들이기도 하고요.”
사랑의 흔적은 응원봉에서도 피어나고 ‘최애’의 미소에서도 피어난다.
나는 오늘 누구보다도 사랑으로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