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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r 23. 2024

아이를 낳아 봐야 어른이 되지

어른의 정의는 무엇일까.


어른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살면서 아이를 졸업할 기회 및 어른으로 입학할 기회가 몇 번 있긴 했다. 물음표를 달며 추측해 보자면,


1.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2. 조금 먼 직장을 다녀야 했을 때?

3. 친구가 같이 독립하자고 말했을 때?

4. 혹시 시집이라도 갔다면?

5.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나는 혹 어른이 될 몇 번의 기회를 놓쳤던 걸까?


방송에 나와 어느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러 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 어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인을 포함해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만큼 원천적인 희생이 어른의 조건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가끔은 어른일지 모른다. 조카들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내 심장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날엔가는 자녀를 둔 친구와 '자식 및 조카들은 절대 아파선 안 된다'라지론을  펼치다 갑자기 내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조카들은 진짜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해."

이렇게 선언하듯 말해 버렸고, 내 친구는 그 이야기에  급히 그렁그렁해졌다. 자신도 그런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자식을 낳아 본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가끔이 아니라 늘 어른이어야만 했다.

(나는 가끔만 어른인 척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어른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자식을 낳아 키우는 그 어마어마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희생 위에 쌓아 올리는 사랑인지 짐작조차 못 한다. 온전히 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도 자주 찾아오는 삶. 그래, 깨끗이 인정하자. 아이를 낳아 보아야 어른이 된다. 자, 그럼 이번 에피소드는 여기서 그냥 이대로 끝...





...을 내기엔 무언가 아쉽다. 그 이유는,

1. 아이 낳고도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 여럿 봤다.

2. 어른의 기준이 사전 3」의 정의처럼 '결혼한 사람'이라 해도 아이를 낳는 것이 어른의 과제는 아니다.

3. 아이를 낳지 않고도 아이를 기를 수 있다.

4. 아이 말고 다른 무언가, 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이도 있다.



"아이를 낳아 봐야 어른이 되지"라는 문장에 반론을 제기하며 나의 희생을 굳이 끄집어내 보자면, 첫째, 쌍둥이 조카를 기르려고 온 가족이 육아에 총동원되어야 해서 이모인 나는 직장까지 관둬 봤다. 둘째,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살며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되어 드린다. (지금도 시골 가서 제사를 돕고 올라가는 기차 안이다.) 셋째, 청소년 교실 지도 교사로 일하면서 청소년들을 위해 시간도 정성도 노력도 돈도 마음도 마구 내어주었다. 넷째... 넷째.. 버스 탈 때 되도록 늦게 타며 자리를 양보한..다.? 이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정정한다. 내가 해 온 이것들은 희생이 아니다. 

희생이 아니라 결국, '사랑'이었다.



른이 되는 방식은 사랑을 하는 방식이다.

감히 산고(産苦)의 희생에 비할 순 없다 해도 나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어떤 통증을 통과해서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싶다.



사랑을 해 봐야 어른이 되지."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아이를 낳아 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듯하다. 나에게도 이미 '나'라는 사랑을 낳고 진즉 '어른'이 된 분들이 내 옆에 계시다. (사...사랑해요, 부모님♡) 


그래, 지금은 '아이 낳아야 어른이 되지'라는 문장에 딴죽을 걸기보다는 박수를 쳐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인고와 산고를 뚫고 이 세상으로 사랑을 가져와 준 모든 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기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가는 많은 이에게 사랑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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