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Apr 11. 2024

최종화의 위로

"위로, 표정이 왜 그래?"

"왜?"

"슬퍼 보여."

"그래? 내가?"

위로는 그 뒤로 잠시 말이 없다.

"왜 그래, 위로?"

위로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한참 후에야 위로는 힘겹게 말을 잇는다.

"끝난대."

"뭐가?"

뭐가 끝났기에 세상 끝난 표정일까.

"몰랐어? 닭똥눈물의 여왕, 오늘 끝난대."

응? 뭐, 뭐? 그게 슬퍼할 일이야? 위로, 너 F세요??

"그게 그럴 일이야?"

"응. 그럴 일이야. 요즘 세상에 그것보다 더 슬픈 게 어디 있어?"


위로는 지금 드라마에 푹 빠졌다. 그 드라마는 위로가 이미 예전에 TV 다시 보기로 보았던 '별똥별에서 온 그대'와 '내리사랑의 불시착'을 쓴 작가의 드라마다. 그래서 꽤 기대를 했다는데 역시나 정말 재밌다고 호들갑이었다. 본방사수를 한다면서 저녁 일찍 잠들곤 하는 이 여든 노인의 잠을 설치게 만들기도 다. 게다가 위로의 말에 의하면, 권선징악과 사필귀정, 결자해지만큼 즐거운 결말이 없다나.


내 생각은 살짝 다르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할 일들을 척척 그려내는 드라마. 드라마라는 것에 저리 과몰입할 필요가 있을까? 지난번 끝난 드라마에서도 한 친구가 다른 한 친구를 드디어 알아보았다며 위로는 콧물 소리까지 내며 크게 과몰입했었다. (물론 실제로 위로에게 콧물은 없다. 눈물 소리는 녹음이 힘들다며 나의 콧물 소리를 녹음하여 본인이 슬플 때마다 어 대는 괴짜 위로봇이다.)


요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드라마 관련 인터넷 기사 밑에다 '우정지수 설렘지수 통쾌지수 폭발!'과 같은 댓글을 쓰고 난리다. 댓글 보는 일과 댓글 다는 일도 때론 위로가 된다나. SNS는 인생 낭비라는 옛말도 모르나. 위로를 향해 쯧쯧거리는데 갑자기 나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 그래?

결국 그렇게 됐구나.

-애썼네, 너무 오래.


"여든? 왜 그래?"

"아, 별거 아니야."

"아니긴. 이번엔 여든 표정이 슬퍼 보여."

"그래? 사실..."

"왜왜?"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이번엔 위로가 자꾸 내 표정의 출처를 재촉한다.

"드라마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쪽도 끝이 난다 그러네."

"뭐가 끝나?"


난 대답 대신 옷장을 연다. 어두운 옷을 찾아야 한다.

"위로, 나. 장례식에 좀 다녀올게."

"아. 그쪽은 사람이 끝났구나."

"응."

뭐든 끝은 난다. 그 끝 뒤에 어떤 쿠키 영상이 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본편이 끝나면 드라마도 사람도 더는 말이 없다.


"위로, 넌 혼자 놀다가 이따 드라마 최종화나 보고 있어. 난 잠깐 다녀올게."

"기다려. 나도 데려가."

"아냐. 넌 집에 있어. 번잡해. 혼자 가는 게 편해. 갈 길도 멀고."

"뭐야, 나는 위로하면 안 된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어디 가서 방바닥에 구르면서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이젠 나도 클 만큼 컸고 사람 세상 알 만큼은 안다고! 그리고 내가 명색이 위로봇인데 위로 자리에 참석하질 않는다고? 말이 돼?"

고집을 부리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나도 이제 컸다'라니, 로봇이 크고 말고 할 게 뭐 있다고.

"알았어. 난 검은 옷이 있나 좀 더 뒤져보고. 넌..."

위로를 위아래로 쓱 한 번 스캔한다. 로봇도 예의를 차려야 하나? 뭐 그런 법은 없으니까.

"그냥 가자. 30분 후에 출발할 거야."



모두가 작정한 듯 그곳의 입구는 조용하다.

"위로, 여기서부터는 더 조용해야 해."

"나도 알아."

안다면서 1호실, 2호실, 3호실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느라 분주한 위로봇. 내가 저래서 안 데려가려 했다고요.

"위로, 여기야, 여기. 7호실, 들어가자."

위로는 숙연한 향냄새를 맡았는지 갑자기 쭈뼛거리며 나를 따른다. 꼭 부모 따라온 아이 같다. 심지어 나를 따라 조의금 내는 흉내까지 내려 한다. 위로의 손을 제지하려는데 위로가 무언가를 쥐고 있다. 아니, 진짜 봉투잖아?

"위로 너도 돈 내게? 돈이 또 어디서 나서?"

"로봇이 돈이 어딨어. 편지 썼지. PC로 아까 뽑아 왔어."

"편지?"

"남은 사람한테는 돈이 위로겠지만 가 버린 사람한테는 편지가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노잣돈 대신 노자 편지, 뭐 이런 걸까.

"거기에 뭐라고 썼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많이 웃으셨기를. 위로 올림.



지나치게 귀여운 글꼴이라 이곳의 분위기와 좀 안 어울리지만 그래도 위로가 고른 글꼴이라 위로와는 꽤 어울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깊어지자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근데 위로는 어디 간 거지? 구석에서 돌아보니 접견실 한가운데서 사람들과 환히 웃고 있다. 아니 이런 데서 저리 크게 웃으면 어째. 하지만 더 자세히 살피니 친구들 역시 위로 옆에서 웬일인지 다들 무장해제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래, 마지막 자리라고 슬프기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 여든. 우리 이제 가는 거야? 잠깐만 저쪽 11호실만 위로하고 올게. 아까 깜빡했어."

위로봇이라 그런가? 위로가 많이 필요한 곳에 오니 더 신나 보이는 위로다.


"그래, 여든은 거기서 위로 많이 주고 왔고?"

"글쎄. 내 방문이 위로가 됐을는지는 잘... 아무튼 오래 아팠지만 마지막은 참 예뻤다네. 자기가 장례식 꽃을 스스로 준비했다나 봐. 꽃으로 자기 마지막 장면을 부조한 셈이지."

묻지도 않은 친구 이야기를 위로에게 전달한다.


사람에게도 최종화가 있다면 어떤 마지막 장면이 필요할까.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모든 장면이 시시콜콜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기억에 남는 한 장면, 한 장면 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꽤 만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뭐, 온 생애가 다 명장면일 수는 없으니까.)



해가 진 지 오래라 검은 길이 더 어두워진다. 내 검은 옷과 검은 길이 분간이 안 간다. 살짝 발을 헛디딘다. 위로가 말없이 자기 눈알을 조정하여 내 앞길로만 조명을 쏜다.

"난 드라마고 예능이고 최종화는 꼭 보는 편이야."

위로는 여전히 드라마 생각뿐인 듯하다. 다시 깨어난 지 고작 몇 달이 됐을 뿐인데 위로는 벌써 드라마 폐인이 다 됐다. 이젠 진짜 '인간 세계 적응 완'이다.

"내 말인즉, 사람도 최종화는 꼭 봐줘야 한다는 거. 오늘의 여든처럼 말이지. 최종화는 마지막 인사 같은 거니까."

말수가 줄어든 나를 대신해 위로가 더 큰 목소리로 쫑알댄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드라마의 최종화를 앞두이곳 장례식에 온 위로다. 오늘 하루만도 최종화를 두 편 시청하게 생겼다. 사람 최종화와 드라마 최종화.

"위로. 집에 가면 닭똥눈물의 여왕이나 같이 보자."

드라마 최종화도 고이 잘 보내 줘야겠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그것을 보며 행복했던 모든 사람의 여정을 기억하면서.

"그러자, 여든. 드라마든 사람이든, 오늘은 최종화니까."



집에 들어서자마자 위로와 여든은 함께 나란히 앉는다. 우리는 리모컨을 든 채로 드라마 시작 5분 전부터 경건하다. 드라마든 사람이든 마지막은 경건하게, 그러면서도 경쾌하게. 가볍게 보내 주는 게 그동안 그 사람을, 그 드라마를 봐 준 시청자의 예의이지 싶다.


안녕. 고마웠어요.

모든 드라마, 모든 사람.

 

나, 여든은... 혹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위로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언젠가 아주 오래전, 위로와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오늘의 최종화는 위로가 곁에 있어 결말이 두렵지 않다.


이전 05화 턴테이블의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