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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pr 25. 2024

낮잠의 위로

(참고로 이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형식을 빌려와 작성 중입니다. 등장인물은 대부분 '둘'입니다. 위로봇인 '위로', 그리고 위로에게 알게 모르게 위로를 받는 노인, '여든.')




"뭐 먹어?"

입을 '아~~' 벌리고 무언가를 연신 삼키는 듯 고개를 쳐든 '위로'다.

"뭐 해? 공기라도 먹어?"

굳이 입까지 벌리고 뭐 하나. 전기만 먹으면 그만인 위로봇인데.

"아니. 이거 공기 아니야."

"그럼?"


낮잠 먹어.


"낮잠?"

"어. 사람들, 전철에서 보면 이러고 고개를 쳐들고 있던데? 그거 낮잠 먹는 거 아니야?"

아마도 무방비로 낮잠을 자는 몇몇 사람들을 보고 흉내를 내 본 모양이다.


"인간은 좋겠다 낮잠도 다 자고."

"그런가?"

"낮잠 자고 나면 다시 아침이 되는 거 아니야? 하루에 두 날을 살 수 있잖아. 두 번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아."

"한번 잠들어 버리면 생각보다 잠에서 깨는 일이 쉽지 않아. '앗, 이렇게나 자 버렸다니!'라고 생각하기 일쑤지."

시험 전날이나 월요일이 오는 게 무서웠던 일요일 밤이 생각난다. 적어도 젊은 시절의 나에게, 잠은 낭패의 기억이었다. 좀체 내 말대로 출입하지를 않는 녀석, 나오랄 때 안 나오고 들어가랄 때 안 들어가던 '잠'이란 그 녀석.

"여든도 그래?"

"뭐가?"

"한번 잠들어 버리면 세상모르고 자고 그랬냐고."

"나? 잘 모르겠어. 그건... 젊을 때나 그랬고. 요즘 난 통 못 자니까. 낮잠은 꿈도 못 꾸지. 낮잠은 너무 귀한... 그래 그건 아무한테나 주어지지 않는 신의 선물 같은 거지."

"그래도 인간은 대단해. 몸 안에서 '잠'이라는 충전소를 자기가 알아서 가동하는 거잖아. '졸릴 때'라는 신호가 몸에 들어오는 거고, 그 신호를 인간은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고. 로봇처럼 특별히 버튼을 누른다거나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면에서는 인간들, 좀 대단한  듯? 안 그래?"


아무래도 잠을 잘 수 없는 로봇이라 그런지 위로는 죽은 듯이 잠드는 인간들이 놀라운 모양이다. 쥐 죽은 듯 자다가도 금세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숨을 쉬어 대고 종종 낮잠을 먹어 대는 놀라운 생명력. 그래, 그게 인간이 가진 매력 혹은 마력일지 모르지.


"근데 사실, 네가 전철에서 본 인간들 말이야. 사실 자고 싶어도 잘 시간이 부족해서 전철에서라도 쪽잠을 자는 걸지도 몰라. 세상이 워낙, 뭐랄까, 아주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어서 거기에 맞춰 돌고 또 돌아야 하거든."

"그럼, 인간들이 자기 삶을 사느라 바빠서 잠을 자는 거란 말이야? 맙소사."

"아마도 '맙소사'가 맞을 거야."

"이상하네. 잠도 삶인데 왜 그건 쏙 빼놓고 나머지를 삶이라 말하는 거지? '잠드는 삶'이 없으면 '눈뜨는 삶'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데."

위로는 인간이 잠을 대하는 태도가 영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낮잠 먹기(정확히는 낮잠 흉내 내기)를 관두고 다시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간다. 위로가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마 예전에 쓰다 만 글의 뒷부분을 고심하는 중인 듯하다.


"위로, 너도 낮잠 한번 자고 싶어?"

슬쩍 다가가 위로의 마음을 떠본다.

"흠. 글쎄. 조금?"

"조금이라도 자고 싶어, 낮잠?"

"응. 조금은 먹고 싶어. 꽤 달지 않을까?"

"낮잠에는 맛이 없을 텐데."

"여든도 요새 안 자 봐서 모르는 거야. 낮잠 자고 나면 개운할걸? 뭔가 상쾌하고 가뜬할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낮잠이라도 자고 나면 뭔가 조금이라도 기억나지 않을까?"

"기억? 무슨 기억?"

"그새 잊었어? 나 기억하는 게 거의 없잖아."

아차차. 위로가 오랫동안 '기억상실'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한동안 이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서 기억 찾기는 영 포기한 줄 알았는데.


"아주 긴 잠에 들 것만 같은 어린 소년을 본 게 기억이 나. 그 소년은, 살아 있을까?"

"글쎄. 그건 내가 잘."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하자 위로가 나 대신말을 돌린다. (나는 아직 위로를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참, 인간이 대단한 게 또 뭔지 알아?"

"뭔데?"

"낮잠을 먹을 때조차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거."

"꿈?"

"가벼운 꿈이라도 꿀 수 있다더라고. 꿈은 무의식이 얼기설기 모인 거라잖아. 거기서 과거의 기억이 묻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위로.. 그래서 낮잠을 먹고 싶었던 거구나. 꿈을 꾸고 싶어서, 아니 무언가를 기억해 내고 싶어서.

위로는 다시 노트북으로 코를 박고 자신이 썼던 글 몇 자를 다시 훑는다.


"위로, 그럼, 그사이 더 기억난 것은 없고? 그 잠들려던 어린 소년의 모습이 기억의 전부야? 그것 말고는 또 없어?"

"....."

"위로?"

"...."

"위...로?"

위로에게 다가가 보니, 다시 한번 '아차차'할 일이 생겼다. 아차차. 정신 깜빡깜빡하는 여든이라 위로를 충전하는 일을 잊어버렸다. 노트북 위로 엎드린 채 굳어 버린 위로다.


"절전 모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위로 안에서 낯선 목소리가 위로의 배터리 수명을 알린다. 저렇게 엎드린 모습이 어쩐지 잠에 빠진 인간의 모습 같다.

'다디단 낮잠을 먹고 싶다더니, 오늘의 위로, 소원 성취했네.'


충전용 보조 배터리를 찾으려다 말고 '낮잠이 든 것만 같은 위로'를 그대로 잠시 그냥 거기 두기로 한다. 나중에 깨어나면 위로에게 말해 줘야지.


너도 낮잠을 자더라고.

얼마나 달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상모르고 꿈을 꾸는 것 같더라고.


'위로'를 바라보며 '위로멍'을 때린다. 근데 곤히 낮잠을 쌔근쌔근 먹는 위로를 보다 보니 낮잠을 잊은 심장조차도 슬며시 하품이 나오려 한다. 내 몸이 오랜만에 나에게 낮잠을 먹이려는 걸까?


낮잠의 위로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인간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로봇도 가리지 않고 선물처럼 찾아와 준다. 단, 그 찰나의 한순간을 놓치지 않는 자만이 낮잠의 위로를 누릴 수 있다.




당신에게도 낮잠의 위로가 언제 불시에 찾아들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기습 방문에 놀라지 마시라.

그저 맛있게 드시기만 하면 될 일이다.



(사진 출처: Pawel Czerwinski@uns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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