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엘리베이터 타야 해."
위로는 다리가 특이하다. 불편한 게 아니고 특이. 혹은 특별. 전에도 언급했지만 다리가 바퀴다. 얼핏 미니 탱크 같기도 하다. 돌돌돌 빙그르르 도는 방식으로 바퀴가 몸체에 매달려 있다.
바퀴여서 그런가, 달리기는 어쩜 그리 잘하는지 인간인 내가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한다. '따릉이'나 '타슈' 같은 공용 자전거로도 못 따라간다. 한번은 내가 위로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인간 세상엔 이렇게 계단이 많아. 그래서 위로, 너 좀 불편하지 않아?"
"뭘~ 그래도 엘리베이터가 있으니까."
"참. 너는 옛날 기억도 없잖아. 기억이 나지 않아 혹 불편하진 않아?"
"뭘~ 근데 여든. 왜 자꾸 나한테 불편하냐고만 물어보지?"
"뭐, 그냥."
"전원이 켜지고서 나에게 기억이란 것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땐, 몇십 년이 통째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이긴 했지. 근데 저기, 여든..?"
"응?"
"아니야."
"뭔데?"
"저기, 여든은 살면서 뭔가가 기억 안 날 때 없었어?"
"글쎄."
"기억 안 나던 게 갑자기 기억이 난다든가."
"어떤?"
"가령, 어린 시절이라든가, 누굴 만난 기억이라든가, 왜 여든이 좀 아팠을 때 누군가 돌봐준 기억이라든가. 침대에 누워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았다든가. 잡은 손에 위로를 받았다든가."
"아니, 지금까지 여든을 살아왔어.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기억해."
"그래도. 어렴풋이..."
"어릴 적에 꽤 아팠던 건 맞아. 하지만 아팠던 것보다 몸이 나은 후의 삶을 기억해."
"그렇구나..."
"그건 왜? 내가 무언가를 기억해야 해?"
"아. 아니야.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지. 천천히 와도 좋고."
"천천히?"
"그래, 여든은 천천히 와."
느리게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라 기다리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던 요 며칠 전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위로가 올 때가 됐는데... 기다림이 길어진다. 일 분, 이 분. 엥, 삼 분이나 지났잖아...? 응?
'왜 안 오는 거지?'
엘리베이터가 꽉 차서 아직 기다리는 건가? 나는 나이 들수록 점점 성질이 급해져서인지, 시간이 다 되어야만 문이 닫히는 이 느린 엘리베이터는 잘 타지를 않는다. 게다가 요즘엔 점점 다리 힘이 빠지는 추세라 다시금 계단 운동을 시작한 참이다.
'그래도 인간인 내가 위로랑 같이 타고 올걸 그랬나?'
슬슬 걱정이 된다. 뭔가 예감도 안 좋고. 내려가는 계단은 무릎 때문에 칠색팔색을 하는 나지만 조심스레 다시 계단을 거꾸로 내려가 본다.
"어?"
"어!"
위로의 다리가 반쯤 보인다. 투명 엘리베이터라 사람과 로봇의 다리가 대롱대롱 매달린 것만 같다. 거의 다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고작 1m를 남기고 멈춰 버린 것이다. 이런이런. 나는 얼른 역무실로 달려간다.
"위로, 괜찮아? 답답하지는 않았고?"
"로봇은 폐소공포증 그런 거 없어. 아, 엘베 고쳐지길 기다리면서 다행인 거 하나 찾았어."
"뭔데?"
"엘베에 갇혀 있는 동안 어떤 애가 쉬 마렵다고 하더라. 애 엄마가 하는 수 없이 자기 텀블러를 꺼냈어. 내가 얼른 막아 줬어. 아기가 편하게 쉬하라고."
"다행이네."
"어. 애도 다행이고 나도 다행이었지. 쉬 마려운 인간이 아니라 쉬를 모르는 로봇이라 다행이야."
"크. 그렇긴 하네."
"게다가 요새 여든이 운동한다고 계단으로 올라가서 다행이었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불편 대신 다행을 찾는 위로다.
"그새 내 염려까지?"
"우린 위로 동료나 다름없으니."
불편한 상황에서도 불편 대신 '위로'까지 찾는 위로다.
꽤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위로답지 않은 태도다. 짜식, 그새 큰 건가.
"그래도 불편하지 않았어?"
"전혀~ 나 때문에 뭐, 사람들은 좀 불편했을 수도."
"왜?"
"내 다리가 부피가 꽤 있으니까."
"아냐. 안 그랬을 거야. 암튼 너, 꼭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하고, 이젠 하다 하다 엘리베이터에도 갇히고. 나라면 그 다리가 불편했을지도 몰라."
뭉툭하게 굴러가는 일체형 다리. 잘 굴러간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인간 세상에서 턱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다리는 뭐 하나일 수도 두 개, 세 개일 수도 있으니까 나만 불편한 건 아닐 거야. 뭐, 이 인간 사회가 모든 다리를 위한 ㅅ회가 아직 아니라는 게 좀 의외지만."
이런 의외는 조금 줄어도 좋을 것이다.
"여든, 난 원래 태어날 때부터 이런 '바퀴 다리'였을 거야. 설령 다른 다리였다 해도 난 이 다리가 불편하지 않았을걸? 사실 난 지금 내 다리가 좋거든."
태어날 때부터 이 다리여서 좋고, 혹 중간에 이 다리로 바뀐 것이라 해도 이 다리가 불편하지 않았을 거라고, 아니 심지어 좋았을 거라고 말하는 위로봇. 그때부터였을까? 위로의 말을 듣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의 휠체어들도 종종 눈에 뜨인다.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이젠 나의 위로가 불편한 위로가 아니라 '편안한' 위로로 보인다.
(어쩌면 그간 나의 이 염려나 이 다정이 혹 불편한 위로였을 수도?)
"위로, 같이 가!"
어느새 멀리 저만큼 앞서는 위로. 턱이고 자갈이고 없는 평평한 평지에 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달리는 위로다. 정말 편해 보이는 우리의 위로다.
(사진: Andres Perez@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