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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n 17. 2024

휴일 다음 날의 위로

월요일의 위로?

-위로

-말 걸지 마.

엥? 말 시작도 안 했는데 이게 무슨.

-위로 대체 왜 그러는데?



날 좋다고 산책 가자고 먼저 날 꼬여 놓고 위로는 지금 버스 정류장에서 급히 표정이 뒤바뀐다. 사람들은 출근길이라 잰 발걸음들을 바삐 놀린다. 우리만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다. 근데 위로가 통 말이 없다.

-저기요, 오늘은 위로가 어디 가출이라도 했나요, 어디 갔어요, 위로?



-이런 날 위로가 어딨어. 휴일 다음 날은 어느 요일이든 다 월요병이지.

-근데 위로..

-왜! 나 월요병 중이니까 말 걸지 마.

퉁명하기는.

-야, 넌 어디 일하고 다니는.. 그니까 직장인도 아닌데 아니 네가 왜 월요병이야?

-여든, 지금 월요병 무시해?

-뭔가 너랑 연결고리가 전혀 없잖아.

-허허, 무슨 소리?


휴일에 예능이랑 드라마랑 엄청 몰아서 막 보여 주다가 월요일 아침만 되면 주말이었던 것을 싹 다 잊고 아침부터 건강 정보 같은 거나 보여 주고, 갑자기 재미없는 날이 되어 버리잖아.


엥? 그건  억지 아닌가. 요즘 같은 ott가 발달한 시대에... 하긴 내가 구독을 안 하니 위로가 뭘 보려 해도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인터넷이 있는디?



-TV도 너무 재미없고, 게다가 저기 저 사람들 좀 봐.

-어디?

-하나같이 굳은 표정.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찌물쿠는 표정들이야.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눈들이 저럴까나?


-위로, 소들은 겁에 질린 눈이겠지. 저 근하는 사람들은 무표정하기만 한데?

-여든, 그게 더 무서운 거야.

-왜?



-삶에게 단단히 겁을 먹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일주일마다 월요일을 먹어치우고야 마는 직장인들.

-그런가?

-그렇지. 월요일을 제대로 안 먹어 두면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 안 오니까.


-그래도 난 가끔 저들이 부러워.

-엥? 왜? 여든은 월요병이 부럽다고? 이거 질병이야. 국가인증이 필요한 병이라고.

-저 출근하는 사람들에겐 말도 안 되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응,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사람 말 끝까지 들어 봐. 난 가끔 생각해. 모든 요일의 병을 앓는 것보다 월요일 하루만 앓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월요일도 화요일도... 심지어 금요일도...

이 여든의 노인에게는 너무나 똑같아서 말이지.. 삶에 기복이 없다는 것도 때론 병이 아닐까. 요샌 다시 잠도 잘 안 와.




며칠 전 이런 대화를 위로와 나눈 게 천하의 실수였다. 그 실수가 화근이 되어 그 뒤로 나는 보름 동안 현재 아주 빡세게 위로의 뒤를 따라다닌다. 아니 아주 나를 퍽퍽하게 굴리는 위로다.


월: 노인일자리 면접

화: 초등학교 안전지킴이 봉사 지워

수: 노노케어 1:3 연계 신청

목: 문화센터 초급 요가 1일 클래스

금: 노인복지관 바리스타 체험

토: 요즘 연락 뜸했던 조카손주 육아 자처하기

....

(위로야, 나 좀 쉬자...)




-아니, 이건 좀.. 2주 내내 싸돌아다니니 내 시간이란 게 없잖아.

-자, 여든. 이제  직장인들의 월요병 심정을 알겠어?

-아니 월요일이고 나발이고 일주일 내내 바빠.

-그거야 바로. 직장인들은 월요병을 앓는 게 아니라 월화수목병을 앓는 거야. 그걸 여든이 여태 모르는 것 같길래 내가 몸소 가르쳐 준 거야.



위로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나, 월요병은 분명 사라졌다. 일주일 내내 월요일처럼 바쁘면 월요병이 사라지는.. 마법... 직장인들처럼 나도 월화수목, 아니 월화수목금병이 걸려 버렸다. 게다가 매일매일 피곤해서 월요병이고 그냥 요즘은 방바닥에 코만 대면 나라 직행이다.



-여든, 이게 내가 여든을 위로하는 방식이야. 알겠어, 내 깊은 뜻을?

-나 참.. 두 번 위로했다가는... (아주 그냥 사람을 골로 보내겠어...)

-골골골골 요즘 잠만 잘 자더구먼. 다 나, 위로봇 덕분인지나 알아.


이하 말은 생략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나, 여든이다.




(사진 출처: Kevin Rajaram@unspa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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