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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18. 2024

계획의 위로

여름 방학에 대처하는 위로의 자세

-위로 뭐 해?

-뭐 좀 쓰는 중.

-지난번처럼 휴재 알림 글이야?

-그럴 뻔했는데... 양심이 있지 3주째 휴재는 좀...

-그럼 뭐 써?

-여름방학 계획!


-시간표 짜?

-시간표가 뭐야?

-로봇이 그것도 몰라? 촘촘하게 시간을 나누어 계획을 세우는 거지. 언제 뭐 할지 써 놓는 거.

-그럼 시간표는... 시간을 갈기갈기 찢어 쓰겠다고 계획 세우는, 뭐 그런 거겠네?

-그렇게까지야... 아무튼 비슷해.

-근데 그런 걸 왜 해?

-응?


시간표를 왜 짜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시간표를 작성해 보았을 뿐. 하라는 대로 하며 살았던 여든이다.


-시간은.. 우리가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도 없고 그냥 흐르는 거잖아. 거기에 그냥 내 마음을 맡기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가?

-그럼~

-그런데 가만... 너, 지금 계획 세운다며? 그건 왜 세워? 그냥 네 말대로 흐르는 대로 생(生)에 널 맡기면 된다며?

-아니, 사람이, 아니 로봇이 계획 없이 어떻게 살아! AI로봇이 판치는 세상에서 로봇이 살아남으려면 계획 정도는 하고 살아야지!


(이런 모순 덩어리 위로봇 같으니라고.) 뭔가 앞뒤가 맞는 위로다.


-그래서 네 그 계획이라는 게 무슨 엄청난 계획인 건데? 로봇 같이 뭔가 정확하고 계산적인 그런 계획?

-무슨! 로봇이 늘 오류 없이 디지털스럽게만 살 것 같아?

-아니면?

-여름 방학 계획은 휴가 계획이나 휴식 계획 같은 거지.

-그래서 무슨 계획이냐고?

-자, 이 사진을 봐.




-뭐야, 이게?

-올해부터 뜨거운 여름이 올 때마다 하루 한 권씩 소설을 읽을 거야! 무려 소설! 이름하여 '1일 1소설 30일 프로젝트!'

-엥? 그게 무슨 휴가 계획이야? 휴가 고문 아니야? 휴가 때 웬 책?


-여름휴가 때, 천고마비의 계절보다는 책이 많이 팔린댔어.

-아니 요즘 세상에 그러니까 누가 책을, 그것도 종이책을 읽냐고. 게다가 네 말대로 '무려' 소설을?

-누구긴 누구야, 나 위로봇이지!

-하루 한 권? 시간이 남아도나 봐?

-소설 읽는 시간은 시간이 남아서 읽는 게 아니야. 시간을 내는 거지. 나한테 친절하기 위해서. 나의 여름, 찬란한 휴가를 위해서.



찬란한 휴가라...



-그래서 위로, 너 언제 그거 시작할 건데?

-응. 바쁜 일 좀 끝나고 7월 26일쯤? 어린이들 방학이 그때 즈음이길래 그냥 그렇게 정해 봤어. 참, 여든도 준비해.

-뭘?

-같이 해야지!

-응? 나? 왜?



여든... 위로받고 싶잖아.



-응?

-여든은 위로가 필요해. 그러니까 여든이랑 나랑 이 여름을 같이 시작해 보자. 책으로 말이야.

-나까지?

-응. 여든까지! 이 여름을 뜨겁게 보내 보자고.

-꼭 그.. 그래야 하나..?


이쯤에서 발을 빼고 싶지만 위로봇 말대로 이 여름, 이 여든은 시간이 남아돈다. 그러니, 낼 수 있다, 책에게 나의 온전한 시간을...


-응. 그래야 해! 재밌을 것 같아.

-과..연?

-그래 보자. 우리, 리스트 더 짜 보자! 여든, 청소년 소설 혹시 좋아해?

-몇십 년 전엔 좋아했지.

-좋았어. 그것도 리스트에 더 추가할게!


여름 방학용 혹은 여름휴가용으로 북 리스트를 짜는 것만으로도 위로의 표정은 싱글벙글이다. 나? 나 역시 읽을 목록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이게 뭐지? 이런 감정? 이상하다. 희한하다. 이 계획이 뭐가 대단하다고 슬며시 기대가 된다.

그리고 위로가 된다.


위로와 있다 보니 내가 점점 위로가 된다. 위로의 얼굴이 되고 위로의 말이 된다.

(아직 책들을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위로가 되는 기분이다. 역시 여름 방학 계획은 안 짜는 것보다는 짜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위로!
-왜?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났어!
-좋았어~ 리스트에 추가!
-오케이!
-참, 읽으면서 먹을 간식 리스트도 작성하자!
-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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