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그 숙제한 공책을 집에 두고 왔어.
학교 전화였는지 공중전화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민학생이었던 여덟 살의 나는 전화로 엄마에게 이 참담(?)한 사실을 알렸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고 나서 거의 처음으로 드러낸 나의 '덤벙'이 아니었을까.)
나는 약속한 장소에 나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엄마를 기다렸다. 그때의 나, 숙제 공책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봄봄(=나)아, 아무리 찾아봐도 네가 말하는 그 공책이 집에 없어."
엄마는 결국 공책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음을 내게 고백했다. 어린 나는 엄마의 그 고백성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나, 공책을 못 찾아서 행여라도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까 봐 그랬을까?
"엄마, 그거 내 가방에 있었어."
내가 초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엄마를 헛걸음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때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으셨더라. 기똥찬 아침 훈련을 마친 후 집에 가는 발걸음은 또 어떠셨을까. 딸의 덤벙을 알게 되어 발걸음이 무거우셨을까, 아니면 그래도 공책을 찾았다는 나의 말에 마음이 좀 가벼워지셨을까.
"저기요. 죄.. 죄송한데요.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
다짜고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500원을 디밀며 했던 말.
"휴대전화를 잃어버려서요."
어린 아르바이트생은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편의점 전화기를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입에선 분수처럼 감사의 말이 터져 나왔다. 바쁜 출근길이었다. 학습부진강사 일을 하던 때라 직접 만든 교구들을 포함하여 이것저것 바리바리 짐을 싸 다니던 시절이었다. 어서 휴대전화를 찾아야만 했다. 안 그러면 설상가상 지각까지 할 판이었다.
당시 내 전화번호를 누르는 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던 것도 같다. 하지만 전화를 마친 후... 곧이어 내 마음은 조금 전 떨림과는 다른 '또 다른 떨림'으로 뒤범벅되었다. (내 주변에서 그 '떨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너, 거기 있었구나...'
나는 통화료 500원을 챙겨 담지 않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지만 마침 고맙게도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나는 약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을까? 어떤 이상한 여자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편의점에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찾지 못한 채 편의점을 나가 버린 모양이라고... 그러나...
편의점 전화에 반응하며 진동이 울린 곳은 다름 아닌 나의 쇼핑백 속. 이것저것 들고 있던 나의 짐들 가운데 어느 곳에선가 나의 휴대전화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 여깄어요. 걱정 말아요. 그런데 어서 여기서 꺼내 줘요. 답답해요.
슬쩍 편의점을 모른 척 빠져나왔다. 머쓱함은 언제나 나의 몫. 당황하지 않고 조금만 더 찬찬히 찾아보았다면 아무 편의점에나 들어가 민폐를 끼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출근길에 진땀을 빼며 나 스스로를 골탕 먹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웬만하면 '나'한테 있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은 정말 잃어버려서 돌아올 길을 잊었거나,
혹은 돌아오고 싶어도 내 눈에 뜨이지 않아 한참을 돌고 돌아 아득바득 나를 찾아내려 애썼다.
-엄마, 나 뭐 놓고 왔나 봐. 잠깐 집에 좀.
-그냥 네 가방부터 먼저 잘 찾아봐.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많은 것들이 여전히 나한테 있다.
문제도 나에게, '덤벙'도 나에게. 그리고...
이 '덤벙'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도 바로 내 안에.
그러나 나는 아직 열쇠를 제대로 찾지 못하여 두리번거린다. (이놈의 열쇠를 어디다 뒀더라...)
신기한 것은, 나는 깜빡하며 '덤벙'을 잊지만 '덤벙'은 결코 나를 잊지 않는다는 점.
그렇게 '덤벙'은 여전히 '나한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