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엄마, 병원 들렀다 온댔어. 아, 잠깐만, 이모. 지금 암미한테 문자가 왔어. "도.시.락. 먹.을.래?"라는데?
-으응? 우리가 김밥 싸 놓고 김치 부침개도 디 해 놨는데? 어제 너희 엄마한테 반찬 가져가라고 미리 얘기했는데 오늘 저녁에 도시락을 배달해 준다고 했다고?
-어.
저녁으로 김밥을 싸 주기로 어제 약속했는데 이상하다. 매사 정확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동생'님'께서 무언가 다른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건지? 궁금하다. 일단 동생에게 직접 연락해 보자.
-병원 가셨다면서요? 애들 배고플 것 같은데 우리가 김밥 직접 가져다줄게.
<아, 맞다ㅋ>
아, 맞다? 오잉? 이건 내 대사인데? 나만 쓰는 문장인 줄 알았던 '아, 맞다'가 철두철미한 동생 입에서 흘러나온다. 살다 보면 이렇게 타인에게서 뜻하지 않게 '나'와 닮은 조각 하나를 발견한다.
<깜빡했어.>
응? 바리바리 음식을 준비한 엄니와 오후 내내 김밥 마느라 바빴던 나도 의아하다. 너가 깜빡하는 일이 다 있어? 좀체 덜렁거리는 법도 없고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는 동생이다. 그녀에게서 갑자기 전에 없던 '인간미'를 발견한다. (너도 인간? 응, 나도 인간!)
사실 나는 '깜빡깜빡'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이 내겐 꽤 호감이다. (자세히 보면,좀 귀엽지 않나요??) 남들은 답답하다고 하고 가끔은 한심하다고 하는 그런 류의 사람들. <덤벙 DNA>를 보유한 자들에게 특히 더 끌리곤 한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으리라. 바로 내가 그런 DNA를 지닌, '깜빡 종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