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통영을 찾은 것은 흠모하는 작가 박경리의 자취를 더듬기 위해서였다. 작가 스스로 ‘고향 통영은 30여 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통영은 그녀에게 끝없는 영감을 안겨준 곳이었다.
박경리의 작품 <토지>, <김약국의 딸들>의 주요 무대가 되는 통영은 살 의지가 꺾인 작중 인물들이 새로이 생명의 기운을 얻는 장소다. <토지>에서 꼽추로 태어난 잔반의 후예 조병수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한탄하다가 장인 소목장이로 거듭나면서 삶의 해답을 찾은 곳, 번민하는 신여성으로 대표되는 임명희가 결혼 생활의 비극 끝에 생을 놓았다가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 된 곳, 그곳이 바로 통영이다. 소설에 빠져들수록 난 통영을 두고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곳을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문학보다 삶이 우선이라 말했던 작가는 손수 텃밭을 가꾸되 특별히 고추밭을 사랑했다고 한다. 통영으로 달려가면 금방이라도 볕 좋은 날 붉은 고추를 널어 말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박경리 기념관과 추모공원은 겉치레 없이 수수했으며 분위기는 고즈넉했다. 그곳의 분위기는 자연 속에 파묻혀 묵묵히 글을 쓰던 작가의 질박한 삶을 꼭 닮아 있었다. 공원에서 묘소로 향하는 길바닥에 새겨진 시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최대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이곳 추모공원과 묘역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박경리 선생의 생가 담벼락에 새겨진 현판
작가의 생가는 보존 시기를 놓친 탓인지 안타깝게도 일반인의 거주지가 되어 개방이 안 된 상태였다. '이곳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집입니다. 현재는 박경리 선생님과 연고가 없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으므로 내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작은 현판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 앞을 뜨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손수 수 마리의 개와 고양이의 밥을 끓여 먹이고 새벽 일정한 시간이면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채워 나가시던 선생이 곁에 계신 것만 같았다.
<축복받은 사람들>, 박경리
발길을 돌리려는데 길 한편 담벼락에 작가의 시 <축복받은 사람들>이 새겨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사랑은 언어도 활자도 아닌/시 그 자체/ 축복받은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대목을 읊조리고 또 읊조렸다. 통영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동안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작가의 숨결이 가까이서 느껴졌다.
박경리 선생은 어째서 통영을 그토록 사랑했을까?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작가는 말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모른다’라고.
미륵산에 올려 내려다본 통영 경관
과연 바다를 거점으로 한 통영의 경관은 아름다웠다.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 바다에 둘러싸인 도시 전체를 내려다본 날,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통영의 숱한 섬과 그것을 둘러싼 바다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가 되어 한눈에 들어왔다. 천해의 절경 앞에서의 두근거림을 이제껏 가슴이 기억한다.
한 인터뷰에서 박경리 선생은 통영을 ‘조선의 나폴리’에 비유하며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과연 그 말이 옳았다. 빼어난 경관의 도시 통영이 숱한 예술가에게 끼쳤을 영감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왔다. 우리는 통영 바다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예정에도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은 통영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 2019 제2회 길 위의 꿈 여행 수필상 길벗상(최우수상) 수상 작품을 몇 회에 걸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