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마주 보며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하여

(2) 통영 여행기(2019년 7월)

by 서지현

뒤늦게 쓰는 통영 여행기(2019년 7월)


# 2019 제2회 길 위의 꿈 여행 수필상 길벗상(최우수상) 수상 작품입니다.


바다와 하늘은 언제나 얼굴을 마주한 채 살아간다. 하늘이 환하게 웃으면 바다도 활짝 웃고, 하늘이 얼굴을 찡그리는 날은 바다의 낯빛도 어둡다.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보는 사람처럼 그렇게 넋을 잃고 통영 바다를 바라봤다. 상식적으로 아는 파란 바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불러오던 노랫말처럼 '초록빛 바닷물'도 아니었다.



통영바다.jpg 통영 앞바다, 바다 빛깔에 취해



햇살이 바다 위로 거침없이 투영된 날이었다. 바닥을 여실히 드러낸 바다는 하양, 비취, 그리고 청록 빛깔의 그러데이션을 이루며 아득히 먼 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바다를 무슨 빛깔로 표현하면 좋을까?’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답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터에 누군가 말했던 것이 뇌리를 스쳤다. 남해 바다는 옥빛 바다라고. 옥은 곧 보석이 아니던가? 눈을 들어보니 통영 바다는 말 그대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았다. 진열대 위에 놓인 보석 앞에서 할 말을 잇지 못하는 새 신부마냥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서있었다.




유난히 쾌청한 일기 덕이었을 게다. 맑고 투명한 하늘 아래서 바다는 막 세안을 마치고 나와 해맑게 웃는 아이의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티 없이 맑은 바다의 표정은 난생처음이었다. 숨 막히는 막바지 더위에 섬과 섬 사이를 넘나드는 여정의 고생스러움이 바다를 대하는 순간 일시에 사라졌다. 오히려 그 노고가 보상되듯 피로가 싹 가셨다.



만지도에서연대도까지.jpg 둘레둘레 둘레길을 따라 만지도에서 연대도까지



도보로 만지도에서 출발해 연대도에 이르는 일정이었다. 만지도로부터 길게 뻗은 둘레길을 걷다가 출렁다리를 건너면 연대도에 다다른다. 우리는 둘레둘레 둘레길을 걷는 내내 신비하고 오묘한 바다 빛깔에 빠져 지루함을 몰랐다. 그 덕에 지치지도 않고 만만찮은 거리를 오갈 수 있었다. 모든 게 화창한 일기 덕택이었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티 없이 맑은 하늘이,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바다 빛깔의 영롱함이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였을까. 엄마의 감정을 곧잘 눈치채던 딸아이의 얼굴이 곧 떠올랐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여섯 살 먹은 아이는 어김없이 가만히 다가와 묻곤 한다.

"엄마, 오늘은 내가 묻는 말에 엄마 대답이 왜 이렇게 짧아?"

뜨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아이와 엄마는 마음의 탯줄로 연결된 채 살아가고 있는 탓인지 때때로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재빠르게 헤아린다.



하늘과 바다의 표정을 들여다본 날, 나의 표정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마냥 기분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오늘의 바다를 떠올리며 힘써 웃자고 다짐했다. 하늘과 바다처럼 엄마와 아이도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살아가는 존재, 엄마가 웃으면 아이도 웃고, 엄마가 찡그리면 아이 마음도 곧 울적해질 테니까.


# 2019 제2회 길 위의 꿈 여행 수필상 길벗상(최우수상) 수상 작품을 몇 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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