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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Nov 15. 2019

100만 원, 내 고생 값

엄마 혼자 아들 둘 데리고 비행, 생각보다 할 만합니다.

문제 1 ) 산호세 한 달 살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국 편 비행기에 관한 질문이다. 남편과 같이 들어오는 비행기 편의 성인 1명, 어린이 2명의 값은 320만 원, 비슷한 시간대 다른 비행기 편의 가격은 220만 원이다. 100만 원 차이가 난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차피 남편은 이미 출국을 한 뒤라 혼자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① 100만 원 더 내고 남편과 같은 비행기를 탄다.

② 100만 원 저렴한 다른 비행기를 다.



나의 선택에 100만 원이 왔다 갔다 한다. 귀국할 때 혼자 13시간의 비행을 감당하면 10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혼자라면 고민도 없이 남편과 다른 비행기를 탈 수도 있지만 내겐 3살, 6살 두 아들이 있다. 출국할 때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렇다 치고, 돌아올 때도 독박 비행을 해야 한다니. 주위 사람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일단 10명 중 2명은 ‘그냥 안 간다’고 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면서 말이다. 차라리 여기서는 유치원도 가고 어린이집도 가는데 거기서는 남편 출근하면 엄마만 고생 아니냐고 덧붙였다. 다른 7명은 ‘100만 원 싼 표를 사겠다’고 했다. 그래도 100만 원은 큰돈이니 엄마가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며 말이다. 오직 한 명은 ‘무슨 혼자 애 둘 데리고 이코노미냐! 비즈니스를 끊으라’고 했다(동생이 혼자 고생할 까 봐 걱정인 우리 언니의 의견이었다). 말이라도 고맙다.


나는 고민 끝에 100만 원을 아끼기로 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엄마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믿는다. 비행시간 13시간에 인천공항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각각 2시간씩의 대기시간을 더하면 대략 17시간만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루에 100만 원을 버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는 무엇보다 잘 알고 있다.


사실 출국 전까지는 괜히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남편이 없는 2달 동안 혼자 버티기 힘든 그런 날엔 계속 내가 스스로 아낀 100만 원이 떠올랐다. 그런 내게 남편은 100만 원 값의 뭔가를 사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냐며 그러라 했지만, 나는 또 그러지도 못했다. 그렇게 며칠은 미국 여행을 기대하며 설레고, 또 며칠은 남편 없는 독박 육아의 힘듦에 서러워하다, 또 며칠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100만 원을 아꼈을까 생각하다 2달이 흘렀다. 그리고 무사히 아들 둘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남편을 만났다.


귀국 편 비행기 시간이 잘못됐다는 걸 안 건 우리 여행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의 귀국 비행기 일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오후 12시쯤이라기에 밤 12시인가 보다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남편 비행기 시간은 낮 12시 40분이고, 내 비행기 시간은 그날 밤 11시 30분이라는 걸 그제야 확인한 거다. 둘 다 똑같이 오후로만 돼 있어서 같은 시간대인 줄 알았다(귀국 도착시간이 왜 다르지 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궁금증을 안고 있었을 뿐). 어떻게 그런 것도 제대로 확인 안 했냐고 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남편과 나 모두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일 뿐.


약 5분 정도 멘붕에 빠졌지만 일단 수습부터 해야 했다. 남편이 먼저 출국한 뒤 혼자 짐을 싸 들고 두 아들과 공항에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내 귀국 일정을 하루 당기기로 했다. 남편이 비행시간에 맞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데려다주고 짐 수속까지 해주면 나는 두 아들과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거다. 어차피 다른 비행기를 타기로 마음먹었으니 공항에서 몇 시간과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몇 시간만 더 감당하면 된다. 다행히 항공사에서는 추가 금액 없이 비행 일정을 변경해줬다.


엄마 혼자 힘들다며 가방을 들어준다는 6살 첫째.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편과 다른 비행기를 탄 건 괜찮은 선택이었다. 혼자 아들 둘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도 할 만했다. 6세 아들은 엄마의 짐을 들어주겠다고 나설 정도로 많이 커 있었고, 둘째는 잘 먹고 잘 자줬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3개월의 미국 생활을 정리할 조용한 마지막 밤이 필요했을 거라 생각했다.


밤 비행기에서 푹 잔 덕에 나와 아들 둘은 하루 이틀 낮의 피곤함은 있었지만 무리 없이 한국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남편만은 일주일 여 시차 적응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보다 오래 떠나 있었던 탓에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더 그리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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