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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멋진 아빠일 줄 알았다.

육아휴직 첫날

by 하룰

1화. 육아휴직 첫날, 나는 멋진 아빠일 줄 알았다.


육아휴직 첫날 아침, 나는 완벽한 계획표를 세웠다.
6시 기상, 아침 준비, 산책, 점심, 간식, 저녁 가족식탁. 웃음가득한 하루!
그날의 나는 부지런하고, 따뜻하고, 여유로운 ‘이상적인 아빠’였다.


물론 상상 속 이야기다.

현실은 7시 10분, 알람도 못 듣고 깼다.
옆에는 아직 꿈나라를 헤매는 아들이 있었다.
“쿵아, 일어나야지~.”
“으음...조금만 더…”
그 한마디가 하루의 시작을 미뤘다.


양치하랴~ 옷 입히랴~
“싫어! 이 팬티 말고!”
“그럼 뭐 입을 건데?” 난 집에선 사각 나갈땐 삼각이 좋아!
“몰라, 그냥 좀 더 누워있을래!”

결국 나는 등교시간에 긴박하게 5분~10분을 다툰다.
한 손엔 아들의 가방, 한 손엔 간식을 들고 전력질주 중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
‘이것이야 말로 진짜 워밍업이구나!.’


집에 돌아오니 정적이 흘러 쉴만하면
곧바로 들려온 한마디.
“아빠, 배고파.”
그 짧은 호소가 내 계획을 산산이 부쉰다~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옷정리하고~
그 사이 TV 앞에 앉은 아이는 이리저리 다니며 과자를 흘리고 있었다.
“한곳에 앉아서 먹으라고 했잖아!”
말은 그렇게 해놓고
나는 이미 손에 물티슈를 쥐고 닦고 있었다.


오전 10시. 커피는 두 번째였다.
머그잔 손잡이가 미묘하게 덜 미끄럽게 느껴질 만큼 손에 힘이 없었다.

창문을 열자 빨래 돌아가는 소리, 냉장고 윙윙거림,
그 사이로 내 한숨이 섞였다.
‘이제 겨우 3 시간 지났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쉼’이 아니라 ‘버팀의 기술’이었다.

점심쯤엔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회사 일보다 훨씬 빡세다.’
회사에선 일 끝나면 성취감이라도 있었지만,
여긴 설거지 끝나면 또 설거지가 쌓여 있었다.
끝이 없었다.


그러다 오후에 아이가 다가와 내 얼굴을 만졌다.
“아빠, 오늘 재밌었어.”
순간 허리가 덜 아팠다.
눈앞의 이 꼬마는, 내가 이 ‘버티기’를 선택한 이유였다.


저녁 무렵, 거울 속 나는 다크서클로 눈 밑은 시커멓고, 머리는 눌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했다.
‘그래, 오늘도 나름 괜찮았어.’


멋진 아빠는 못 됐지만,
조금은 진짜 아빠가 된 하루였다.



#오늘의 루틴 : 아침 커피 2 잔, 저녁 5분의 멍함.
#오늘의 감정 : 피곤 → 뿌듯
#오늘의 문장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은 그래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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