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돈 버는 일 = 살아가는 일"
[세부(Cebu, Philippines) 남부 투어]
#07, 바다를 건너서...
세부섬 남쪽 탐피(TAMPI) 선착장에서 배 위로 차를 올렸다.
차를 배에 실어 보기는 처음이다. 배에는 꽤 많은 차가 있었고
사람도 많이 타고 있었다.
배에 외국인은 나밖에 없는 거 같다.
관광객들에게서 “세부에는 한국 사람만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관광지가 밀집해 있는 막탄(Mactan)이나 세부 시티(Cebu City)에는 한국인이 많이 눈에 띈다.
관광객도 많지만, 어학연수를 와 있는 학생들과 가족들 그리고 '한 달 살이'로 오는 사람 등등
한국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쇼핑몰이나 유명한 관광지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한국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세부섬의 “탐피(Tampi)”에서 네그로스 “바토(BATO)”까지는 화물선으로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바토(BATO)” 선착장에서 “김 선생님”이 계신 “바이스(Bais)”까지는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이다. 초행길이니 1시간은 달려야 할 것 같다.
배에서 차를 내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선착장이 있는 읍내를 벗어나자 바로 사탕수수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리핀 “네그로스(Negros) 섬”은 사탕수수로 유명한 곳이다.
스페인 식민 지배 때부터 만들어진 농장들에서 엄청난 양의 사탕수수가 재배된다.
탐피(Tampi)에서 “바이스 시티(BAIS City)” 까지 가는 동안 사탕수수밭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추수가 끝난 사탕수수밭은 거의 황무지에 가까웠고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은 곳에는 큰 잡초같이 생긴 사탕수수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한 시간쯤 사탕수수 받을 지나자 “바이스 시티(Bais City)”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조그만 읍내 수준의 마을이지만 이 근처에서는 제일 큰 도시였다.
“김 선생님”에게 전화로 도착했음을 알리고 동네 구경을 했다.
작은 동네라 딱히 볼 건 없었다.
'바이스 시티'는 평범한 필리핀의 시골 읍내였다.
필리핀에 오래 살다 보니 필리핀 시골 동네가 그리 신기해 보이지도 않는다.
장사하는 상인들, 깎으려는 손님과 실랑이하는 노점상들....
아이들 학비를 걱정하고, 저녁 땟거리를 고민하는 소시민의 모습은 필리핀이나 한국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동네 구경이 끝나갈 즈음 김 선생님을 만났다.
김 선생님은 넓지도 좁지도 않은 조그만 단층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KOIK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 국제 협력단)”
단원으로 바이스 시티의 학교에서 아이들 컴퓨터를 가르친다.
처음 왔을 때 학교에 제대로 작동되는 컴퓨터가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새로 컴퓨터실을 만들 정도의 재정이 없었기에 수업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냥 시간만 때우면서 날짜를 보내야 했는데 김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 KOICA 본부에 사업계획서를 보내고 설득 작업을 해서 한국의 본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냈고,
그 돈으로 필리핀 오지의 학교에 새로운 컴퓨터실을 만들었다. 그의 노력 덕에 지금 '바이스 시티(Bais City)'의 학생들은 컴퓨터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김 선생님은 60세가 넘은 나이에 시작한 첫 번째 '해외 봉사활동’을 꽤 만족하는 것 같았다.
숙식 제공에 월급 100만 원 정도가 필리핀 KOICA 단원의 처우이다.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하기 힘든 일이다.
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 나이가 됐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돈 버는 일”을 제외하고 내가 했던 일이 무엇이 있었던지를 생각해 봤다.
떠오르는 게 없었다.
왜? 나는 지금 돈 버는 일 외에 다른 어떤 일도 떠올리지 못할까?
그런 일을 한 적이 있기는 할까?
“돈 버는 일” 외 다른 일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내가 지나온 시간 중에 '돈 버는 일'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돈 버는 일 = 살아가는 일"
이 등식을 반박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질문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당장 뭔가 멋진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 찔리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어서 일까?
이번 여행이 끝나기 전에 변명거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7부 끝)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 번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