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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05. 2023

100원짜리 소설가

내 인생도 SSS급 먼치킨이 될 수 있다면

들어가며 I

이것은 웹소설 작법서가 아니다.

100원짜리 소설로 빌어먹는 어느 글쟁이의 처절한 성장물이자,

저렴한 생존물이다.




인생은 잘 풀리지 않아 내리막길이고, 내 주식계좌의 주가 또한 하락하고 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가.


인생은 롤러코스터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도 있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레일처럼 말이다.

빌어먹을. 그럼 내 인생의 레일을 설계한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왜 내리막길만 있고 오르막길은 안 나오는지?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 설계된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인생의 레일을 설계한 기술자는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자격증도 없는 사짜이거나, 아니면 술에 취해 롤러코스터가 아닌 미끄럼틀 도면으로 잘못 만들었거나. 아무래도 A/S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생이 잘못됐을 땐 누구한테 A/S 받아야 하는 걸까? 신? 나는 믿는 종교도 없으니 따질 데가 마땅치 않다. 그럼 부모님?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은퇴하셨는데 무슨. 그럼 정치인? 음, 이건 말을 말자. 결국 나는 그냥저냥 내 힘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난이도 높은 게임일수록 더 재미있겠지. 그래, 밖을 돌아다녀보면 현실이 정말 게임 같았다. 치트키 없으면 개고생인 극악 난이도의 게임.


[메뉴판]

웹소설 : 100원 (회당) [효과=재미 20 상승]

아메리카노 : 2,000원 (대용량의 생존용 포션) [효과=정신력 50 상승] 

아메리카노 : 4,500원 (프랜차이즈 커피) [효과=정신력 50 상승, 감성 10 상승]

아메리카노 : 6,500원 (고오급 핸드드립 커피) [효과=정신력 50 상승, 감성 50 상승]

간짜장 : 7,000원 [효과=허기 100 상승, 미관 30 하락] 

설렁탕 : 10,000원 [효과=허기 100 상승, 한국인의 소울 100 상승]

월세 : 500,000원 [효과=집주인에게 함박웃음 버프, 납부하지 않을 시 집주인의 분노 게이지 50 상승]

...


이 게임 참 어렵다. 내 인생의 주가는 쭉 내리막길인데, 물가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배트맨처럼 야금야금 잘도 올라가고 있었다. [지구 온라인]이라는 이 현실 게임의 설계자는 사디스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밸런스 패치가 시급하다. 난 만 원짜리 지폐로 두 끼 정도는 해결하고 싶단 말이다. 더욱이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프리랜서답게 불규칙한 수입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내 인생도 뭔가 불규칙하고 불안했다. 올해로 10년 차 방송작가인 나는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욕망이 가득했다.


나 혼자서도 일할 수 있다면.
내가 주체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방송은 당연하게도 협업이기 때문에 일하는 타이밍과 방법 등을 내 스스로 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일을 받는 입장인 프리랜서. 일이 생기면 하는 거고, 일이 없으면 쉬는 거다. 그래서인지 이 방식이 나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인생이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기분이랄까? 이제는 주체적으로 나만의 일을 하고 싶었다. 즉, '내 것'을 하고 싶었다. 나는 뭔가를 창작하는 것을 즐거워했으므로 유튜브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한 가지가 있었다. 좀 전의 메뉴판 제일 위에 있던, 가장 값싸고 저렴한 것.


웹소설 : 100원.


웹소설. 처음엔 방송일만 하던 나에게 전혀 관심 없던 분야였다. 하지만 나 혼자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주체적으로 쓰고,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앉아서 글만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니! 최근 히트한 <재벌집 막내아들>의 원작이 웹소설이라는 사실과 다음과 같은 각종 지표들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웹소설 원작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시청률 고공행진! 최고 시청률 26.9%!]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 1조 원 돌파!]

[웹소설 작가, 1년에 수억 원 대 수익]



글자 크기처럼 나도 그 달콤함에 압도되었다. 100원짜리 웹소설이라니. 딱히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저게 뭐가 재밌지? 라고 막연한 생각만 했을 뿐. 처음엔 웹소설 특유의 제목부터가 거부감을 일으켰다. 'SSS급 OO가 OO을 숨김'이라든지 '이 세계에서 나혼자만 OO함'이라든지. 어쩌면 유치할 수 있는 제목들과 내용들이었다. 먼치킨(강력한 캐릭터) 주인공이 혼자서 세계를 장악하는 내용을 무슨 재미로 보지? 그런 생각만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웹소설 작가들은 먼치킨 주인공을 통해 자신 또한 먼치킨이 되었다.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써서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수익을 내는 사람들 말이다. 달콤한 목표가 정해지자 자연스레 웹소설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그러자 부담 없이 술술 읽히는 것으로 시작해 웹소설의 묘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곳이 꿈에 그리던 신대륙이라고. 중간 과정 없이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작가들의 유토피아라고 말이다. 그래, 그동안 내가 해온 예능과 드라마만이 정답이 아니었다. 기회는 웹소설에 있었다.


(남성향) 웹소설 주인공들은 마법도 쓰고 하늘도 날았다. 나도 그 판타지처럼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1년에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세금을 많이 내면 어떡하지? 부푼 꿈을 안고 웹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전까지 예능 프로그램 등으로 쌓아온 짬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SNL에선 짧은 대본을 공장처럼 찍어냈으니, 웹소설을 쓸 때도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 그동안의 인생은 밋밋했다. 마치 웹소설 속 주인공이 능력을 갖기 전 평범한, 혹은 찌질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나 또한 처절할 정도로 찌질했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여기까지 보면 웹소설 속 주인공 서사로 딱이었다. 나도 이제 날개를 달 차례였다. 웹소설을 통해, 100원짜리 소설을 팔아 10억짜리 집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환상 같은 것이 내 눈에 아른거렸다.


날자, 날자구나

내 인생도 웹소설 속 주인공처럼 한번 날아보는 거야.

그렇게, 비상해 보는 거야.

내 인생에 날개를 달아다오.

웹소설아.



그렇게 난생처음 웹소설을 써봤다. 한 편, 즉 5,000자를 완성한 것이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다. 설정도 신선하고 문장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리고 마침내. 업로드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댔다. 내 집 마련, 100원짜리 소설로 지어질 동전의 집을 꿈꾸며.


...


처음으로 쓴 웹소설을 업로드한 뒤 든 생각은 하나였다.



100원도 못 벌게 생겼다.



조회수가 1시간째 '1'이었다. 

충격적인 건 그 1 또한... 나 자신이 누른 것이었다. 


빌어먹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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