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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16. 2023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았다

100원짜리 소설가 (2)

나는 웹소설로 인생에 날개를 달고 싶었다. 웹소설은 드라마나 예능에 비해 보다 개인적이고 민주적이었다. 창작의 범위가 무궁무진하고 독자에게 직접 글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매력. 그 점에 나는 매료됐다. 더군다나 운 좋게도 유명 플랫폼에서 웹소설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선자에게는 어마어마한 상금뿐 아니라 웹툰화의 기회까지 준다고 하니, 나에게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될수 밖에 없었다. 상금과 특전을 본 나는 온몸에 피가 돌았고, 눈에선 불이 활활 타올랐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고 오직 글만 써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니! 웹소설이 천국이로구나, 마침내 무릉도원을 찾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 쓴 웹소설을 등록했다. 벌써부터 웹소설 작가가 된 것 같았다. 웹소설 한 편을 완성하긴 한 거니까. 또, 희망 회로가 작동했다. 이미 머릿속에는 공모전에 당선된 뒤 인기 순위에 내 글이 올라가 있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내 100원짜리 소설을 10,000명이 결제하면 나에게 얼마나 떨어질까와 같은 속세적인 생각도 했다. 그렇게, 글을 올렸다. 웹소설 공모전은 '연재형'이었으니 글을 올리면 독자들이 바로 볼 수가 있었다. 즉각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조회수 : 1


맙소사. 글을 올린 뒤 1시간째 조회수가 1이었다. 내가 쓴 웹소설이 이렇게나 인기가 없다고? 더 큰 충격은, 조회수 1마저 내가 읽은 거라고? 결국 아무도 안 봤다고? 나는 내가 웹소설계를 씹어먹을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내 글이 서울 한복판에 버려진 유흥업소 전단지 같았다. 아니지, 그것은 적어도 조회수가 '1000'은 훨씬 넘을 것이다. 반면 난 0이었다. 그동안의 나의 경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5,000자가 허공에 날아간 느낌이었고. 사람은 믿기 어려운 일을 마주치면 처음에 부정한다고 했던가. 나는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 인터넷이 멈췄나?


그래, 어쩌면 그래서 숫자가 안 올라가는 걸 수도!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다. 원망스럽게도 컴퓨터 본체에 연결된 랜선에는 초록색 불빛이 깜빡거려 연결 상태가 정상임을 알렸고, 핸드폰의 카카오톡마저 정상 작동했다. 그렇다. 멈춘 건 인터넷이 아니라 내 희망 회로였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렸다. 언젠가 독자들이 내 글을 읽어주시겠지. 그렇게 난 평정심을 유지하며 여유롭게 기다렸다. 아니다. 사실 나는 새로고침을 미친 듯이 무한 반복하며 조회수가 올라가길 기다렸다. '내가 뭘 잘못 썼나?' 하고 내가 쓴 글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때, 조회수가 올랐다! 무려 2로 말이다. 기쁜 것도 잠시, 그것 또한... 방금 내가 눌러서 카운팅이 된 것이었다. '여긴 시스템이 왜 이래!!!'하고 플랫폼을 원망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쪼그라들었다. '0의 남자', '스팸 메일도 나보단 조회수가 높을 거야.', '난 누굴 위해 글을 쓰는가'.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것을. 제발 와서 욕이라도 했음 좋겠다고 생각 든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문득 번화가 거리에 뿌려진 전단지가 부러워졌다.


나는 그 뒤로도 웹소설 몇 편을 더 올렸다. 묵묵히 올리고, 오기에 또 올리고. 


조회수는?


2, 1, 0, 1, 1, 2...


젠장, 무슨 2진법도 아니고 내 소설의 조회수는 2를 넘지 못했다. 그야말로 망망대해. 스케일이 큰 공모전 때문인지 업로드되는 글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내 글은 올리자마자 몇 초 만에 저 지하 깊숙이 파묻혀 버렸다. 독자보다 작가가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잠깐, 독자가 있긴 한 건가? 싶었지만 독자는 있었다. 독자에게 인기 있는, 조회수가 높은 글은 순위권에 당당히 올라갔었으니까. 옥석이 가려지는 순간이었다. 즉, 나는 분명 독자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웹소설쯤이야 쉽다고 생각했다. 아니,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품격 있는 문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읽기 쉬우면 독자들이 알아서 붙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읽기 쉽다고 쓰기도 쉬운 것이 아님을 알았다. 간결하게 쓴다는 것은 오히려 고수의 영역이었다. 편지에 남긴 파스칼의 말이 생각났다. 


미안합니다.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씁니다


나는 100원짜리 소설을 너무 얕봤다. 

문득, 나는 내 자신을 뒤돌아봤다.


나는 내가 S급인 줄로만 알았다. 웹소설 주인공들처럼 한 번에 내 인생이 바뀔줄 알았다. 나름 글밥 좀 먹었다고 안도한 것이다. 나는 내가 웹소설 업계를 때려 부술 S급 먼치킨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도넛집에서 파는 작은 먼치킨 무더기 중 하나였다. 혹은 먼치킨 고양이 같거나. 먼치킨처럼 짧은 다리로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것이 웹소설로 밥 빌어먹으려는 나 같았다.


잠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실망할 자격이 있나? 실망도 자격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웹소설을 써본 적도, 아니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 놓고선 웹소설로 공모전 수상 같은 한 방을 노렸다. 본질보다 욕심만 앞선 것이다. 잘 나가는 웹소설을 분석하거나 독자들이 열광하는 포인트를 공부하지 않았다. 해봤자 얕은 수준이었다. 나는 빠르게 인정하기로 했다. 나의 절대적인 실력이 부족했음을, 나는 웹소설 주인공처럼 먼치킨이 아니란것을. 한 방이 아니라 서서히 올라가자고 다짐했다. 내 인생은 현대판타지가 아닌 휴먼 드라마였으니까. 인생은 원래 성장형 드라마다.


그때였다. 

그제서야 내 능력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치 웹소설의 '상태창'처럼.


 <등장인물 요약 일람>

이름 : 기면민 

나이 : 32세

특징 : 방송작가 10년 차에 여전히 글빨 없음

모아둔 돈 : 거의 없음

필살기: 걷는 거

전용 스킬 : <늦잠 Lv.4> 
                  <걷기 Lv.28> 
                  <공모전 지원 Lv.99>  
                  ...                  
                  <웹소설 Lv.0>

종합 평가 : 뭣도 모르고 웹소설에 도전했다가 폭삭 망함.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희망이 없음.
       
종합 등급 : F급 (잠재력 : ???)


겸손해지기 시작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까. 나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웹소설을 처음부터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또 다른 공모전...이 아닌 웹소설 아카데미였다. 배울 수 있다는 것도 기회였다. 좋아,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자. 어차피 인생은 공짜니까. 100원짜리 소설을 팔기 위해 내가 팔 수 있는 건 '자존심' 하나였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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