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프리 yefree Jun 27. 2022

독일에서 우산을 팔면 망하는 이유

국경 하나에 달라지는 우산의 필요성

이 글의 조회수가 어느새 10만을 넘겼네요.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출처: 이슈에디코 - 사랑의 불시착'으로 돌아보는 북한 경제상 내 본문 사진


‘사랑의 불시착’을 보는데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윤세리와 리정혁은 평양행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 정전으로 인하여 기차는 불가피하게 최소 12시간을 정차해야 한다. 그 말을 듣고 남한에서 온 세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때 드넓은 들판을 헤치고 기차 쪽으로 달려오는 상인들이 보인다. ‘메뚜기 상인’들로 꼼짝없이 기차에 묶이게 된 승객들에게 음식, 물, 이불 등 필요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사람들이다. 불리한 상황에 처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공략해 반짝 매출을 올리고 사라진다.


이런 메뚜기 상인들이 비단 북한에만 있을까.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한다. 4박 5일 동안 스페인을 여행할 때도, 스페니쉬 메뚜기들을 보았다. 항상 일조량이 많고 좋은 날씨 탓인지, 스페인 사람들은 참 쾌활하고 유쾌했다. 하지만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서도 갑작스레 내리는 비는 얼마든 마주할 수 있다. 거리를 걷는데 순간 먹구름이 끼더니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다들 어디서 숨어있다가 나타난 것인지. 온몸에 우산을 주렁주렁 매단 채 2~3 유로에 판매하는 상인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일반 가게에서도 부랴부랴 간이 가판대를 설치해 우산을 팔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메뚜기 상인들을 보는데, 모든 광경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아마 내가 한국에서 머무르다가 스페인에 들린 일정이었다면 자연스레 우산을 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거리에 서서 이 모든 낯선 풍경을 다큐멘터리 보듯 관찰하며 멀뚱멀뚱 서있었다. 소낙비가 머리카락과 옷을 빠르게 적셔오고 있었지만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독일에서 살았던 나에게 ‘비’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처음엔 정말 진귀한 풍경이었다. 거의 우박이 떨어지기 직전인 세찬 비에도 독일인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너는 내려라. 나는 내 갈길을 간다.’ 후드만 뒤집어쓴 채 유유히 비 사이를 걸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에서 비는 흔한 손님이다. 언제 방문하겠다는 약속도 없이 찾아와 홀연히 사라진다. 완전히 갔나 싶은데 어느새 돌아와 또 문을 두드린다. 변덕이 심한 날씨 앞에서 우산은 사치다. 처음엔 우산을 꼬박꼬박 들고 다녔지만, 변주가 심한 독일 하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인생에서 잃어버린 우산은 많았지만 고의로 우산을 잃어버리고 싶은 적은 또 처음이었다.


국경 하나만 달라졌을 뿐인데 이리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니. 한 문화가 형성되는데 날씨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란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게 갑작스레 비가 올 때, 여전히 독일의 생활방식을 따르고 있는지 묻는다면, 아니다. 예전엔 그냥 걸어갔을 비도 요즘엔 천막 아래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걸어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괜찮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달라진 환경 탓일까, 나이가 들어 몸을 사리는 걸까. 둘 다인 것 같다.

이전 04화 한국인 98%는 이해 못 할 독일 병원 문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