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한 잔 하고 싶다고.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니, 이직 면접에서 떨어졌단다. “이거 준비하느라 몇 주간 주말 내내 매달렸던 게 허무하다”, 며 집게로 고기를 뒤집으며 이야기를 한다. (어쩌다 보니 매번 이야기가 술과 고기로 시작하는 것 같다) “야 그래도 진짜 열심히 노력했는데, 정말 수고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며 (짠, 하고) 한잔 함께 들이킨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나도 아는데, 올림픽 정신 (결과가 아닌 참가에 의의를 둔 다는 뜻)으론 안돼. 아무리 노력을 하면 뭘 하냐. 우선 하루빨리 이직을 해야지 뭔가 돼도 될 것 아니냐”. 나도 그의 한숨 섞인 하소연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직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결정적인 결과물이 나온 것이 아직 아니니까. 사실 그가 이직을 준비하면서 들인 노력이 후에 있을 면접에서 빛을 보이리라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이 마음에 와 닿기는 힘들다. 당사자인 경우에는 더더욱. 우리는 아무래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스갯소리처럼 말하는 ‘올림픽 정신’도 생각해보면 사실 굉장히 고귀한 것이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 서는 것이 아닌가) 참가하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 메달을 따지 못 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가 어떠한 경기를 했는가 보다는 메달의 유무에만 의미를 둔다.
우리가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성향은, 어쩌면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잘못된 칭찬 습관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라나는 시기의 청소년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칭찬은 그 사람의 올바는 도덕적 사고방식과 건강한 자존감 확립을 위한 방향을 잡는 나침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청소년 정신 건강 세미나를 할 때마다 부모님들께서 아이들과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칭찬, 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칭찬의 나침반 방향을 잘못 잡았을 경우, 바로 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된 칭찬, 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단순하게 이야기해도 칭찬을 들어서 기분 나쁜 사람이 없고, 자연스레 우리는 칭찬을 받으려는 행동을 추구하게 된다. 만약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결과로만 이루어진다면 – ‘이루었다’, ‘이루지 못했다’의 이진법(binary)적인 체계 – 그로 인한 불안감은 의욕의 저하시키고, 우리의 자존감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누구나 노력한 만큼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말이다.
거기다 조금 따져보면 좋은 결과나 결실은 ‘축하’ 해야 할 일이지, ‘칭찬’할 일이 아니다. 김연아 선수가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으로 금메달을 딴 것은 '축하'할 일이지 '칭찬'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칭찬'해야 할 점은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다. 마찬가지로 친구의 이직 실패로 ‘축하’해 줄 수는 없지만, 그가 들인 노력에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올바는 칭찬법을 위해서는 축하할 일과 칭찬할 일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주에 갑자기 세미나들이 줄줄이 이어져서 조금 분주한 한 주였다. 세미나 주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아무래도 청소년 상담 센터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녀와의 올바른 대화법’, 또는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기’와 같은 주제의 세미나가 많았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부모님께서는 아이들과 조금 더 올바른 대화, 그리고 문화를 이해해서 자녀들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우시려는 것 같다. 사실 부모님께서 자녀와 대화가 안 되고 청소년의 문화가 이해가 안 되어도 애들이 학교 다니고, 공부 잘하면 세미나 같은 거 안 오신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성적’과 ‘공부’의 차이점이다. ‘성적’은 공부를 해서 나오는 결과이고, 공부는 학생이 무언가를 배우고 생각하는 과정이다. 위의 예와 빗대어 말해보면, 자녀가 공부를 하는 것은 '칭찬' 할 일이고, 성적이 높게 나오는 것은 '축하' 할 일이다. 우리가 가진 무의식적인 결과 중심적 사고방식은 자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성적과 정신건강이 비례한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굉장히 위험하다. 근래에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상담소를 찾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생각해보면 성적은 좋은데 성적에 너무 집착하는 탓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올 정도로 문제가 되는 경향이다. 행복과 비추어 생각해보자. 우리가 칭찬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결과라는 조건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슬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