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간만에 (감자탕에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 사업 얘기가 나왔다. 한동안 적자만 찍던 가게가 드디어 흑자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마음이 무거워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야, 너 맨날 술 마시고는 스트레스받아 쓰러지겠다고 꼬장 부렸잖아) 수고했다며 소주를 잔에 채워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운이 좋았다'.라고 조용히 말한다.
내 주위에 흔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일이 잘 풀리면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 정서로 보면) 일종의 겸손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반대로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일이 안 풀리면, 우리 대다수가 '운이 안 좋았다'가 아니라, '내가 못나서 그래' (또는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왜 일이 잘 풀리면 '운'이고, 일이 안 풀리면 '내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내가 이렇게 말을 꺼내자 친구가, 옛날에 자기 아버지께서 자신을 패배주의적이라고 핀찬을 주신 적이 있다고 한다. 정말 그래서 그런 걸까.
왜 별 것도 아닌 것에 꼬투리를 잡냐, 고 친구가 이야기를 한다. 그냥 '운이 좋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그렇게 나쁜 거냐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운이 좋다'는 표현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운이 좋다'는 말처럼 기분 좋은 표현이 있을까). 예기치 못 한 좋은 상황을 맞았을 때, 우리는 '운수가 좋다'는 표현을 한다 (대박을 치면 운수 대통이라 하더라). 따라서 우리의 노력과, 시도와 상관없이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비로소 '운이 좋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내가 노력한 일의 대가를 받았을 때 그것이 오로지 '운' 때문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건 나에게 좀 실례가 되는 말이 아닐까. 친구의 사업이 흑자로 돌아서게 된 것은, 물론 우리가 말하는 '운'도 있었겠지만, 그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겸손함에 아마도 '노력'보다는 '운'이라는 표현을 했으리라.
나는 내담자들에게 자신을 소리 내어 칭찬하라는 조언을 종종 한다. (또는 칭찬할 점을 직접 종이에 적어보라고 한다). 타인과 대화의 힘이 크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나 자신과의 대화에서 변화될 수 있는 것 또한 많다. '나'는, 또 다른 '나'라는 내면 아이의 부모다. 그 부모의 마음가짐이 '잘 되면 운 탓, 잘못되면 내 탓'이라면, 내 안의 내면 아이는 심적으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서 취업이 잘 되었다, 운이 좋아서 대학에 합격했다는 말은 없다 (아니 잠깐, 금수저랑 천재 빼고). 운이 좋다는 말은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았는데 캔커피 네 개가 우르르 떨어질 때 쓰는 말이다. (참고로 그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운도 실력이다'는 말은, 어쩌면 운이라는 말 뒤에 감춰진 부단한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노력을 인정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