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샴푸를 사러 집 앞 쇼핑센터에 갔다. 친절하게 인사하는 점원이 내 모발 상태를 보겠다면서, 디지털 현미경 카메라로 모발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 무료니까 우선 해봤다 - 내 머리 구석구석 만져보며 사진을 찍더니 남성용 전용 샴푸, 컨디셔너 세트를 권장한다 (가격이 세금 포함해서 한국 돈으로 20만 원. 아니 당신, 제정신이야?) 그러면서 내 나이 – 내 나이가 어때서? – 에는 이런 상품을 쓰면서 모발 관리를 해야 한다, 고 한다. 아니면 대머리가 된다고. – 이제는 암보다 탈모가 더 무서워질 나이인가 – 아무래도 이건 아니잖아, 해서 그냥 제일 평범한 샴푸 컨디셔너 세트를 집었더니, 뭐 그런 게 ‘걱정’되지 않는다면 저가형을 사용해도 되겠다고 - 괘씸하게 말 - 한다.
기분 좋게 샴푸를 사러 갔다가 덤으로 근심도 안고 온 날이었다.
나는 걱정을 유도하는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즈니스와 연관이 되면 더더욱 그렇다. 불안감의 증가가 소비의 증가와 비례한다는 말처럼,그들은 - 비즈니스의 입장에서는 - 소비자의 불안감을 높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의 동기가 '걱정'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다이어트를 위해 피트니스 센터를 찾는 사람들, 피부 관리를 위해서 피부과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 유명 학원들을 찾는 학부모들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그 엄습하는 불안감에서 안도하기 위해, - 거기에 절묘하게 불안감을 자극하는 비즈니스 마케팅을 통해서 - 우리는 피트니스 센터 회원권을 끊고, 피부과를 찾고, 자녀들을 유명한 학원에 등록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일시적인 안도감을 얻는다. 물론 이러한 안도감이 무작정 나쁘다고 말 하기는 어렵겠지만, 동시에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닌, 임시방편적인 방법으로 보이기도 한다.
불안감은 사춘기 시절 이마에 난 여드름과도 같다. 보면 볼수록 커지고 때로는 주먹만 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불안감에서 해방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드름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안감의 원인을 뿌리째 뽑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지속적으로 과도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우리가 불안감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불편한 (웬수 같은) 불안감과 조금 더 친해지기 위해서는 '내 불안감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궁금증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