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서럽다고 느낄 때는 다름 아닌 아.플.때.다. 작년 연말에는 혼자 사는데 우울해하지 말라고 여기저기서 망년회 초대를 받게 되었는데, 오래간만에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기도 해서 무장 해제하고 맘껏 먹었고,
2019년 연초에 배탈이 크게 났다.
평소에는 고철을 씹어먹어도 다 소화시키는 위장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다음날이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며칠째 복통이 이어지자 솔직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장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고민이 꼬리의 꼬리를 물자, (1) 잠도 잘 안 오고, (2) 식사를 할 때마다 겁도 나고, (3) 속이 더부룩하고 (4) 스트레스받으니까 머리가(!!!) 빠진다. '혹시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이러다 나 대머리가 되어... 잠깐! 장가도 못 가고 죽으면 좀 서러운데...'
라고 고민하다가 결국 병원을 찾아서 들은 이야기는 "이제 후라이드 치킨 먹지 마세요",였다.
나: 속이 일주일째 좋지 않아서 왔어요
의사: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나: 연초부터요. 연말에 조금 과식을 했어요
의사: 비슷한 이유로 종종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뭐 드셨나요?
나: 파스타, 감자, 후라이드 치킨, 양념치킨, 로스트비프, 소시지, 햄, 오징어튀김, 닭강정, 탕수육, 치맥...
의사: (막으면서) 네 알겠고요, 튀긴 음식은 피하시는 게 좋겠어요
나: 네?
의사: 가급적이면 후라이드 치킨은 드시지 마세요. 맥주랑은 더더욱 그렇고요.
그렇게 나는 후라이드 치킨을 못 먹는 남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큰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건강에 대해 참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점점 더 안 좋아지겠지?', '언제부터인가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오던데', '마지막으로 밤을 새운 게 언제였더라?'... 등등. 그리고 이러한 고민들의 종착역은 항상 "어쩔 수 없다"다. 그리고 함께 찾아오는 우울감.
그리고 이러한 고민, 우울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것은 "후라이드 치킨 외에도 참 맛있는게 많아서 다행이야"라는, 일종의 소리내어 말하는 혼잣말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고민의 해결법은 행동보다 발상의 전환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드니 체력이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함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가 아닐까. 그리고 내가 시선을 두기로 한 곳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면 어쩌지"가 아닌 "후라이드 치킨 좀 안 먹어도 괜찮아"였다. 또 생각해보면 후라이드 금지령이 선포되고 나서 좋은 점도 생겼다. 건강을 생각해서 회사에 도시락을 싸가다보니 보니 금전 지출이 줄었고, 식곤증도 같이 줄어들었다. 뭣보다도 밖에서 직장인들 고민 1순위라는 '오늘 점심 뭐 먹지?' 에 대한 고민도 도시락과 함께 사라졌다. 간혹 외식을 할 때에도 고를 수 있는 메뉴 선택의 폭이 줄다 보니 우유부단하게 고민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후라이드 치킨 못 먹는 것은 나에게는 크나큰 슬픔 아주 사소한 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많은 고민들은, 긍정적인 사고만으로도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사고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마음가짐?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한다'보다는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연습을 해야 우리의 마음도 긍정적으로 바뀐다'가 맞지 않을까?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귀가 얇고 우유부단하다. 우리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우리의 마음도 안심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우리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