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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므 레터 Apr 05. 2023

샤워할 때 노래를 부르십니까?

우리의 고약하고 우렁찬 18번에 대하여.

요즘 바에서 일하고 있다. 새벽 한 시까지 운영하는 샴페인 바다. 12시가 가까워오면 절반 이상의 손님들은 만취 상태가 된다. 2월 28일은 수요일인데 주말처럼 손님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왔다. 다음 날이 공휴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미국의 최신 팝, 힙합을 주로 트는데 그날따라 사장님이 한국 노래를 틀었다. 정확히 무슨 노래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를 테면 그 플레이리스트는 흐르고 흘러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노래까지 갔다.(대충 “우린 이제 슬슬 정리할 테니 알아서들 나가라”라는 뜻이다) 손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둘씩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중 유독 쇼맨십이 좋은 한 손님을 지켜보며 “저건 노래방 18번이 분명하다”, “옆집에서 밤에 종종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서 나도 답가를 해준다” 등등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나는 샤워할 때 저렇게 노래를 부른다”는 얘기를 했다. 문득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 에디터 시절에 냈던 기획안이 떠올랐다. “당신의 샤워송은 무엇인가요?” 주변 사람들의 샤워송 플레이리스트를 모아보겠다는 그 귀여운 기획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 잡지사를 다닌 2년 가까운 세월동안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기획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 선배들과 편집장님의 의견은 “샤워할 때 노래를 불러?”와 “샤워할 때 노래를 안 불러?”로 양분됐는데, 나는 후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그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뒤통수가 한 대 얻어맞은 듯 시원해졌다. 내가 언제부턴가 샤워할 때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샤워할 때 내가 부르는 노래는?


샤워할 때 노래를 부르게 되는 심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겠지만, 어쨌든 샤워는 신나는 일이라는 반증 같은 것이다. 샤워에는 좋은 효과가 여럿 있다. 일단 몸이 개운해지고 몸에서 향기가 난다. 사치스럽지만, 샤워기에서 나오는 뜨뜻한 물을 맞고 있으면 샤워를 끝내기가 싫어진다. 가끔씩은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불현듯 떠올리거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아마 혈액순환이 좋아져 뇌에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몸의 구석구석을 닦다 보면 나 자신을 돌본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곧 몸이니까, 몸을 만지다보면 오늘 하루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정리하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된다. 그 기쁨이 우리가 샤워할 때 목청껏 부르는 고약한 유행가들 속에 묵묵히 담겨 있다.


샤워하면서 노래 부르기를 멈춘 건 아마 2021년 8월에서 9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기력하고 만사가 귀찮게 느껴져서 저녁도 건너뛰고 멍하니 있다가 마지못해 새벽 3시쯤 샤워를 하곤 했다. 때로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 이웃에 피해가 될까 봐 그냥 잠에 들었다. 그즈음 한창 절정기에 이르던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식당이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따르면서 8시가 되기 전에는 꼭 식당에 가야만 했는데, 나는 7시 50분에 부랴부랴 옷을 입다가도 그대로 바닥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주저 앉아 엉엉 운 날도 있었다. 이듬해 봄, 화창한 어느 날에 나는 병원에 갔다. 증상은 “샤워하기가 싫어요.” 3주의 기다림과 3시간여의 정밀 검사, 그리고 또다시 2주의 기다림 뒤에 정확한 병명과 원인을 알게 되었다. 만성우울증과 강박성 인격장애, 그리고 번아웃 증후군. 어릴 때부터 청결이 강조되는 가정 환경에서 자란 덕에 완벽한 샤워에 대한 강박이 있지만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인해 ‘완벽하게’ 무언가를 수행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지고, 정작 샤워는 하지 않으면서 샤워하지 않는 나를 속으로 끊임없이 질책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여름에도 나는 나흘동안 머리를 감지 않고 머리카락이 나뒹구는 바닥에 누워 있기만 했다. 나흘만에 샤워를 하면 기분이 잠시나마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기분은 아니었다.


요즈음은 노래를 부르는 대신 노래에 의지해서 샤워를 한다. 적당한 샤워송을 골라야만 화장실에 들어간다. 입은 꾹 닫은 채로, 몸을 타월로 쓱싹쓱싹 닦으면서도 ‘움직이기 귀찮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은 좋다. 여전히 나흘에 한 번 꼴로 샤워를 하지만, 가끔은 이틀만에 샤워를 할 때도 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있고, 무엇보다 새로 사귀기 시작한 애인 덕에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회복된 것 같다. 오늘은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샤워를 통해 나를 돌보는 느낌,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좋은 아이디어는 이 글을 구상한 것이다. 쓰고 나니 머릿속을 한바탕 씻은 것처럼 아주 개운하다. 내 문제가 무엇인지, 내가 잊었던 소중한 기쁨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매일매일 샤워를 하는 새나라의 어른이 될 리는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할 수 있어, 별 거 아냐', '일단 물만 뿌리자', 혹은 '일단 옷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자!' 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기분은 든다.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내가 놀란 고양이 눈동자가 되도록 격하게 뽀뽀세례를 퍼붓는 애인이 아주 큰 힘이 되고 있다.(이렇게 나를 모에화하는 걸 보니 정말 자존감을 조금은 되찾은 것 같다) 나는 아주 천천히, 매일 샤워하는 기쁨을 되찾을 것이다. 옆집에 들리든 말든 아랑곳않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샤워하는, 거품처럼 퐁퐁 솟아오르는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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