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첫번째 펀딩에 참여한 분들께 플래너를 보내드릴 때가 다가온 것이다. 발송할 수량은 약 350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항상 대부분의 작업은 마감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끝난다. 2-3일 정도는 여유있게 잡고 진행했는데, 막판 제작과 검수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하루전에 플래너가 도착했다.
주문한 수량은 기본형 하드커버 500권과 만년형 노트커버 1000권이었다. 앞으로 2-3일간 우리집 거실은 난장판이 될 예정이다. 나의 작업실이자 공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플래너에 하자가 없는지를 확인한다. 이때는 잘 몰랐지만 약 10%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이물질이 뭍었거나, 마감이 제대로 안됐거나, 로고 각인이 삐뚤어졌거나 하는 것과 같은 문제다. 문제가 없는 제품만 따로 분류를 해서 정리한다. 이때부터는 마치 컨베이어 벨트의 로봇과 같다. 반복 작업이 시작된다. 포켓 설명서는 미리 4단으로 접어서 준비한다. 감사 엽서도 미리 봉투에 넣어서 준비한다.
플래너 커버에 띠지를 결합한다.
포켓 설명서를 종이 포켓에 넣는다.
감사 엽서를 함께 비닐봉투에 넣는다.
비닐 봉투를 완충재 (feat.뽁뽁이)로 보완한다.
안전봉투에 넣고, 운송장을 부착한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한분께 보낼 제품이 준비된다.
이렇게 작업을 끝내는데 5시간정도면 될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반나절 이상은 걸린다. 예상보다 지난한 작업이다. 하지만 또 이만큼 신나는 시간도 없다. 내 판단 미스로 배송 수량이 1/3로 줄었지만, 그래도 300권이 넘는 수량은 거실 한구석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한창 작업하는 나를 보면서 아내가 웃으면서 말한다.
"오빠, 남들이 보면 엄청 많이 버는 줄 알거야"
그렇다.
나라도 이런 모습을 밖에서 보면 '오 대박인데' 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딱 절묘하게 펀딩 금액만큼 모두 제작, 배송 비용이 들었다. 내손에 남은 것은 0원 이었다. 물론 크라우드 펀딩의 목적이 돈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제작에 필요한 만큼 펀딩을 받는게 기본이다. 하지만 잘되서 제작도 잘되고 추가적인 수입도 남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게 솔직한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더더욱 내 판단 미스가 아쉽게 느껴졌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했다면 상당한 이윤을 남겼을 것이다. 이윤을 넘어서 그 만큼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SNS를 곧 시작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작점에 팬들을 확보하고, 보다 여유롭게 다음 버전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50명만 후원해줘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욕심이라는것이 끝이 없다. 300명이 넘는 고객을 미리 확보한 것인데 말이다. 단 몇번 만들고 끝낼 생각으로 하는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근시안적으로 생각할까. 하는 마음으로 나를 나무란다.
이렇게 10시간 이상을 배송준비를 하면 수련을 하는 기분이다. 별의 별 생각이 들고, 기대감과 두려움, 아쉬움과 뿌듯함의 감정이 왔다갔다 한다. 앞으로 이 브랜드를 어떻게 키워갈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기대감이 가장 크다. BLOCK을 기다리고 계실 고객분들께, 문제없이 도착할때의 기대감이다. 고객분들께서 BLOCK을 열어보고 확인하면서 만족할때의 기대감이다. 그리고 사용하면서 다음 번 BLOCK을 기다릴때의 기대감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 기대감은 아쉬움, 그리고 다시는 BLOCK을 찾지 않게 만들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할때는 더욱 긴장된다. 혹시 플래너 인쇄에 어떤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제본은 잘 됐는지, 구겨진데는 없는지, 커버는 판판한지, 펼침의 느낌은 적당한지, 종이 포켓은 제대로 인지, 배송중에 손상문제는 없는지.. 끝도 없다.
회사에서 마케팅을 할때도 종종 고객에게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는 이런 정도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물론 그때도 대충하진 않았다. 하지만 모든것을 쏟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브랜드는 아무것도 아닌 큰 브랜드였는데도 말이다.
아! 정말 내 브랜드를 만들고 있구나.
어깨는 무겁지만, 날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