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밧 모험 여행 ⑪] #Day2 CBT 캠프 (국경)-카라쿨
덧없이 흐르는 삶의 시간. 마음의 큰 울림을 듣는다. 열정은 우리를 낯선 곳으로 이끈다. 어느 순간 가보지 않은 길 위에 선다. 오롯이 나를 만나는 순간. 메마른 파미르 고원에서 모든 것이 멈췄다. 무엇하나 해결할 수 없을 때, 여행자의 시간은 다시 플레이 된다. 그리고 감동의 선율로 마무리 된다
따뜻했던 난로는 이미 꺼졌다. 두꺼운 이불 위 침낭을 끌어 얼굴을 덮는다. 새벽 추위 때문에 몇 번을 뒤척였다. 겨울 캠프에 온 듯하다. 고원의 아침 공기는 신선하다. 7번 유르트 앞에 자전거로 여행하는 커플 텐트가 있다. 서리내린 텐트 물기를 털어낸다. 추울 텐데 반바지에 패딩을 입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 오니 비슷한 성향의 여행자를 많이 보게 된다. 캠핑, 자전거, 트레킹, 아웃도어를 즐기는 여행자들이다. 그들이 부러운 건 왜일까? 함께 할 수 있는 동행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여행이다.
오쉬에서 사온 신선한 바나나 한 송이를 자전거 커플에게 주었다. 가슴에 품으며 무척 좋아한다.
“레닌봉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가나요?” 오늘 일정을 물어보았다.
“아니요. 파미르 하이웨이 따라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갈 예정이에요” 자전거로 넘는다니 대단하다
“ I respect you" 존경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헌난한 길에 서는 여행자들로부터 수행자의 모습을 느끼게된다. 긴 여행을 마치는 순간 아름다운 삶의 충만을 느낄 것이다.
소소한 행복이 있는 곳. 툴파쿨 호수
시리얼에 빵. 따뜻한 차로 아침을 먹는다. 텁텁한 빵만 먹기에는 목이 마르다. 준비해온 오이와 과일을 곁들여 식사를 하니 훌륭하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책을 나간다. 만년 설산과 고원위의 초원 그리고 툴파쿨(Tulpakul) 호수 주변에 유르트 캠프가 형성되어 있다.
언덕에 올라가니 또 다른 풍광이다. 호수 넘어 깊고 넓은 계곡이 펼쳐진다. 구소련 최고봉 레닌봉(7,128m)으로 이어진다. Traveler' s pass(4,130m)까지 다녀오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설산을 가까이 조망하기 위해 4-5시간 정도 트레킹을 해야 한다. 툴파쿨 호수에 묵어야하는 이유이다. 트레커들은 큰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한다. 베이스캠프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올 예정인가보다.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한동안 산을 바라본다. 자유다. 무아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쉼 없이 플레이 되는 세상이 일시정지 되었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방목해놓은 소들이 기웃기웃하며 유르트 캠프로 다가든다. 어린 소 한마리는 자
기 집인 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한 켠에 웅크리고 있던 개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쫓아낸다. 덩치 큰 소는 꼼짝 못하고 달아난다. 호수 주변의 초지에 양, 염소, 말들을 방목시켜 놓았다. 열심히 풀을 뜯는다. 배가 부르면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다. 꼼짝 않고 서서 눈만 껌뻑거린다
매끈하게 빠진 말 한 마리가 언덕에 있다. 다가가도 놀라지 않는다. 고삐를 잡고 조금 움직여 보지만 힘이 무척 세다.
“그래 알았다. 건들지 않을게!” 말에게 장난치기를 그만두고 발길을 돌린다. 사람을 알아보는가 보다. 유르트 꼬마아이는 능숙하다. 입으로 내는 휘슬 소리에 말은 귀를 쫑긋하며 바로 반응한다. 아이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간다.
푸른 호수는 깨끗하다. 한 모금 입에 대보니 짠맛은 없다. 이식쿨에서는 낮은 농도의 소금 맛이었다. 말을 탄 사람들이 보인다. 어린 아이에게 이끌려 갔던 말은 멋지게 치장을 했다. 안장을 착용하고 원래 하던 일 인양 사람을 등에 태우고 씩씩하게 걷는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승마 트레킹이다.
호수 감상에 취하다 깜짝 놀랐다. 무심코 산등성이를 보니 무수한 검은 점들이 움직인다.
‘세상에나!’ 염소와 양들이 높은 산의 중턱에서 떼로 이동하고 있다. 일사분란하다.
‘한번 따라가 볼까?’ 호기심에 다가간다. 가까워 보였는데 한참 걸린다. 무리는 열심히 풀을 뜯고 외곽에 선 녀석들은 경계를 한다. 멀리서부터 나를 주시하고 있다. 내려와 보니 더 높이 놀라갔다. 저러다가 산 정상까지 갈 것 같다.
국경을 지나 타지키스탄으로
10시에 온다던 드라이버는 11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다. 오고 있다는 말 뿐이다. 오늘은 국경을 넘어 타지기스탄 카라쿨(Karakul)까지 가야한다. 시간 절약을 위해 산 아래 사리모골까지 다른 차량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사리모골 CBT사무실 가니 드라이버가 도착해 있었다. 그래도 왔으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일행들은 마음이 상해 있다. 다행인 것은 생각했던 것 보다 차량이 A급이다. 중고지만 외관은 아주 깨끗하게 잘 관리되었다. '헉' 차량을 구입한지 한달이 되었고 이번이 처음 파미르를 넘는 거다. '괜찬겠지! 성능만 좋으면 됐지뭐!'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차량에 짐을 옮겨 싣는다 엄청 많은 수박이 있다 왠 수박이 이렇게 많지?’ 파미르 선물용이었다. 드라이버는 타지키스탄 무르갑 사람이었다. 본인은 가족들과 떨어져 키르기스스탄에서 살고 있다. 오쉬에서 수박 한통이 500원 정도하니 저렴하면서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연실 미안하다고 하며 우리는 마음껏 먹으라고 한다. 기분 좋게 출발을 해야지! 즐거운 여행을 위해 파이팅!
1시간여 먼지 쌓인 포장길을 달린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이다.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차량 몇 대가 대기하고 있다. 특별히 통제하는 것은 없다. 짐 검사도 차량 트렁크를 열어 확인하는 정도다. 출국심사가 끝나면 바로 군인 통제소가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여권과 파미르 퍼밋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얼굴이 우리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젊은 군인들이다. 해군시절 사진을 보여주니 악수를 하며 엄지척을 한다. 사진촬영이 안되는 곳인데 본인들이 먼저찍자고 한다. 추위 때문에 방한용 군복은 엄청 두껍다. 길을 오가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떠나는 우리 일행에게 손까지 흔들어준다.
국경을 통과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길이다. 이런 험한 길을 자전거로 넘는 여행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레져가아닌 신념을 갖고 달려야 할 것이다. 1시간을 달리니 키질아트 패스(Kyzyl Art Pass, 4,282m)에 거의 왔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점점 고도가 높아진다. 여기를 넘으면 타지키스탄 국경이다.
4,300M. 차량이 멈췄다
‘어! 큰일이다’ 차량 앞 보닛(Bonnet)에서 순식간에 연기가 난다 엔진소리가 요란하다. 방지턱을 넘듯 흔들리더니 시동이 꺼져버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모두 밖으로 나왔다. 금방 불이라도 날 듯 주변이 연기로 자욱해진다. 과열인 듯하여 생수를 부어 봐도 효과가 없다. 차체에 복잡하게 연결된 호스가 끊어진 상태다. 타지키스탄 국경까지는 2km 남았다. 6시가 넘어 날은 점점 어두워질 텐데 4,000m가 넘는 고원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근처에 정비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시기 위해 구입 했던 생수를 모두 부었다. 연기가나면 다시 멈추고 물을 채워야했다. 어렵게 타지키스탄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은 허름하고 조용하다. 국기가 달라지니 타지키스탄이구나! 싶다. 빨간색, 백색, 녹색 삼색으로 나뉘고 가운데 황금왕관 주변으로 7개의 별이 있다. 인도 국기의 형태와 비슷하다. 군인과 이미그레이션 관계자들이 모두 나와 차량을 확인한다. 고장 원인은 파악했는데 교체할 수 있는 부속이 없다. 응급처방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빈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워 출발한다. 자기 일처럼 신경써준 군인들이 고맙다.
국경에서 2시간 정도가야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카라쿨(KARAKUL)에 도착한다. 물로 식히며 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어둠이 내려 주위는 온통 캄캄하다. 기온이 떨어지다 보니 피곤하다. 모두들 침묵속에 차량 라이트 앞만 응시한다. 간간히 보이는 불빛이 마을에 왔음을 알려준다. 마을로 진입해 홈스테이 숙소에 도착한다.
벌써 다른 지프들이 여럿 있다. 다행히 빈 방이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일행을 인내해 주셨다. 난로에 불을 지피니 온기가 금방 퍼진다. 방으로 직접 저녁도 차려주셨다. 감자볶음에 빵. 차. 비스킷 뿐이다. 따듯한 방에서 먹는 늦은 저녁, 세상 행복이랄 것이 별거 없음을 느끼게 한다. 긴 하루의 여정이었다. 타지키스탄의 시간이 시작된다.
글. 사진 김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