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백서(4)
만약 당신이 음식과 기분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면, 혹은 나와 같이 식이장애로 고생하고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볼 일이 있다. 바로 식사일기. 식사일기는 식이장애 치료 요법으로 쓰이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단순히 식이장애가 아니더라도 헬스장에서 PT를 받는 사람이라면 식단을 찍어 트레이너에게 보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또한 먹는 음식마다 SNS에 올린다면(거기에 기분까지 더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식사일기가 될 수 있다. 식사일기의 포인트는 식사를 ‘기록’하는 거니까.
식사일기의 시작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식이장애를 겪으며 식사일기를 쓰진 않았다. 일기에 쓸 식사도 없었을뿐더러 쓰라고 해서 고분고분 쓰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나의 고집(인지 깡인지)을 익히 알고 있는 주치의는 내게 식사일기를 강요하지 않았다(언급은 했다). 대신 입원 생활동안 내 식사는 의료진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러나 식이장애를 소식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먹은 음식을 기록했다. 대단하게 기록한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먹은 음식과 양을 기록하는 정도였다. 여기서 섭취한 음식의 양은 ‘조금’, ‘보통’, ‘많이’ 정도로만 기록했다. 꼼꼼하게 적다 보면 g 수를 확인하는 강박이 다시 일어날까 봐.
뒤늦게 내가 식사일기를 쓴 이유는 ‘건강한 하루’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이어지는 거식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져 짜증을 내거나 정신이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정신이 나가면 얼마나 나가나 싶겠지만, 누가 봐도 정신이 나가 보일 정도였다. 정신의 가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먹으면 또 먹는 데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체중이 오르는 일에도, 식사 후 쏟아지는 무기력에도. 식사 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하루의 마지막에 죄책감까지 쏟아졌다. 안 먹어도 문제, 먹어도 문제인 것이다.
하루라도 건강하게 지내보자는 마음으로 식사일기를 쓰자 나는 ‘적정량’과 ‘적정 음식’을 찾아갈 수 있었다. 먹어도 급격하게 체중이 늘지 않는 정도의 양을 확인하면서 체중에 관한 스트레스를 지우고, 먹으면 피곤하지 않은 음식을 찾으면서 무기력에 관한 스트레스를 지웠다. 그렇다면 먹으면서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다! 먹지 않았을 때의 히스테릭도 없으니 마음은 평화를 찾았다. 내 마음은 그때 처음으로 평화를 겪었다.
식사일기 활용하기
이러하듯 식사일기는 식사에 의한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 만약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있어 식사 때마다 스트레스가 든다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먹는다는 것이 ‘왜’ 스트레스가 되는가.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다이어트가 된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먹고 싶은 것 대부분은 다이어트를 방해할 테니).
그렇다면 어떻게 식사일기를 써야 할까. 먼저 식사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더 깊게 생각해 보자. 다이어트라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함’과 ‘체중 증가’, ‘배고픔’이 있을 수 있겠다. 스트레스의 요인을 깊숙이 파고들었다면 문제를 해결해 보자.
<편안한 식사와 다이어트를 위한 식사일기>
1.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 > 식사량
2. 먹고 싶은 것을 먹되, 체중이 늘지 않는다. > 식사만족도
3. 그러면서 배고프지 않아야 한다. > 기분 및 컨디션
이 모두에 적합한 음식을 식사일기를 통해 찾아가는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누가 봐도 고칼로리라면, 먹는 양에 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예: 마라탕에 식재료를 조금만 담는다). 만약 먹고 싶은 음식이 대체 가능한 음식이라면 다른 음식으로 대체해 볼 수도 있다(예: 마라탕을 먹고 싶지만, 샤부샤부를 택한다던가). 혹은 먹고 싶은 음식을 충분히 먹어도 괜찮은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예: 마라탕을 먹되, 채소만 가득 넣고 국물은 먹지 않는다). 더한다면 먹고 싶은 음식을 배부르고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에: 마라탕은 포기한다. 대신 채소라도 데쳐먹을 것이다. 나는 그걸 좋아한다, 나는 그걸 좋아한다, 나는 그걸...). 마지막 방법은 식습관을 바꾸는 일이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한 일이다. 입맛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식사일기에 기록해야 하는 건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는 문항에 답을 하는 형식이다. 만약 나처럼 식이장애라면 양을 얼마나 먹었는지, 어떠한 기분이었는지, 폭식을 하진 않았는지, 구토를 했는지 등을 적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어느 때 구토를 하고 어느 때 하지 않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개인이 가진 인지적 오류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다이어트라면 앞서 문제에서 보았던 것처럼 식사량과 무엇을 먹었는지, 그에 따른 식사만족도가 얼마인지, 이후 기분과 컨디션이 어땠는지를 체중과 함께 기록하면 좋다. 무리하게 식이조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와 맞는 다이어트 음식을 찾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문항은 자신의 스트레스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한 식사 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조금만 검색해도 여러 식사일기의 포맷이 나온다. 누군가는 운동량과 함께 기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식사시간까지 기록하기도 한다. 하지만 식사일기의 잊지 말아야 하는 포인트. 편하고 즐거운 식사를 찾아가는 것! 스트레스받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 목적지를 잃지 않으면 멀더라도 그곳에 닿기 마련이다. 한순간 달라지는 삶도 좋지만, 꾸준히 하루의 힘을 믿어보는 것. 그것이 식사일기에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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