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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Oct 20. 2023

종이컵 식사하기

소식좌 사회생활백서(4)

‘아 나는 그 정도는 하기 싫은데....’


 여기까지 온 당신의 마음을 한번 예측해 봤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 무척이나 감사하겠지만, 솔직히 나라면(특히 식이장애에 푹 빠져있던 때라면) 이런 글을 읽어도 ‘해봐야겠다!’보다 ‘귀찮은데’를 먼저 떠올렸을 것 같다. 아닌가? 아니면 어쩔 수 없고.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어? 좀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 당신을 위해(그렇게 생각하게 될 당신의 미래까지 합쳐) 이번에는 식사조절을 하는 방법에 관해 소개하려 한다. 이는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종이컵 식사. 방법은 간단하다. 먹는 양을 종이컵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종이컵 식사


 내가 종이컵 식사를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작업실에서 매번 배달음식을 시켜 먹다 보니 앞접시가 필요했고, 앞접시가 없을 때면 종이컵을 앞접시 삼아 먹었다. 참고로 나는 엄청난 수전증을 가지고 있어서 앞접시가 없으면 99%의 확률로 바닥에 흘리거나 옷에 흘리게 된다. 그래서 앞접시는 필수였고 의도치 않게 종이컵 식사를 시작했다.

 사람들과 함께 배달을 시켜 먹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이컵을 앞접시 삼아 음식을 먹었는데 먹을 만큼만 종이컵에 담았다. 다 같이 음식을 깔고 먹을 때엔 자신이 얼마나 먹는지 모르기 마련인데 종이컵 식사는 달랐다. 먹을 수 있는 양을 종이컵에 덜고 천천히 먹은 뒤 다시 더 담으니 함께 하는 식사에도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 계산할 수 있었다.

 먹는 것을 늘 계산하면 골치 아프겠지만(나처럼 강박이 있다면 더더욱), 종이컵으로 음식을 담으면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는 엄청난 장점이었다.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쉽게 계산이 되고 먹는 양을 확인하니 과식이 줄어든 것이다. 종이컵에 담긴 음식을 다 먹고 나면 다시 종이컵을 채우는데 이때 자신이 얼마나 더 먹을 수 있는지, 얼마나 배부른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일종의 과식 방지턱인 셈이다.



종이컵 식사 활용하기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서 종이컵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만약 나처럼 식이장애가 있다면 적정량을 먹는 것에 목적을 둘 수 있다. 토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의 양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산해 보자. 종이컵 1개의 용량은 180ml이다. 종이컵 가득 음식을 담으면 약 180g의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먹을 수 있는 만큼(토하거나 소화제, 이뇨제 등을 복용하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을 종이컵에 담고 내가 몇 컵을 먹는지 본다. 두 컵이라면 360g 정도를, 세 컵이라면 540g 정도를 섭취한다고 보면 된다.


 조금 더 활용을 하면 반드시 한 컵을 채우지 않더라도 반 컵, 3분의 1컵 등으로 더 세밀하게 양을 확인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500g까지 스스로 허용하는 범위이기에 종이컵 3컵 정도 음식을 섭취하면 과식을 피할 수 있다(=토를 하지 않는다). 만약 당장 배가 부르지 않더라도 이때 멈춰야 한다. 천천히 배부름이 느껴질 때도 있기에.


 식이장애가 아닌, 식이조절을 할 때에도 종이컵은 활용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식이조절을 할 때는 다이어트 때일 것이다. 원래 종이컵 식사는 다이어트 방법으로 나온 것이기에 다이어트에도 적합하다. 첫 번째로 종이컵으로 물 두 잔을 마신다. 배고픔에 과식을 하지 않기 위해서. 두 번째는 한 끼 식사량을 정하고(300~500g) 정해진 용량만큼 종이컵으로 계량하여 식사한다. 만약 종이컵에 음식을 넣어 먹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다면 종이컵으로 계량만 하고 예쁜 접시에 플레이팅을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먹는지’를 아는 것이다. 적정한 양을 먹는다면 세끼 모두 먹어도 다이어트가 가능하다.


<종이컵 식사 활용하기>

1. 종이컵으로 물 두 잔 마시기
2. 한 끼 식사량을 정하고 정해진 용량만큼 종이컵으로 계량하여 먹기
3. 너무 처량하게 느껴지면 접시에 이쁘게 플레이팅 하기


 여기서 주의할 점. 종이컵 3개 안에 먹는다고 음식을 꾹꾹 눌러 담지 않도록. 더 먹고 싶다는 마음에 너무 꾹꾹 담으면 다이어트 효과가 없을 수 있다. 180ml에 200g이 담기는 기적도 행할 수 있다. 또한 너무 탄수화물만 담지 않도록. 반찬과 밥을 적절하게 섞어 종이컵으로 식사하는 것이다.


식사일기와 종이컵 식사의 만남


 더 나아가 식사일기와 종이컵 식사를 함께 한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종이컵으로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일기에 기록하는 음식의 단위를 종이컵으로 설정하고 탄수화물을 많이 먹었을 때(흰쌀밥 2컵=360g)와 적게 먹었을 때(흰쌀밥 1컵=180g)의 컨디션과 기분, 몸상태를 체크하고 기록해 보자. 탄수화물이 주는 몸의 영향을 디테일하게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활용해 보자면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를 종이컵으로 계량해 보자. 종이컵을 동그라미로 표시해도 괜찮다. 탄수화물 ㅇㅇ, 단백질 ㅇ, 지방 ㅇㅇㅇ. 이런 식으로 종이컵을 기준으로 아이콘같이 표시하면 어떤 밸런스로 식사를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식사 이후에는 역시나 꼼꼼하게 자신의 상태를 체크한다. 몸이 무겁지 않은지. 졸음이 쏟아지진 않는지. 속은 개운한지.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은지. 기분과 컨디션을 체크하는 문항까지 만든다면 식이조절의 끝판왕이 될 수 있다.


종이컵 식사를 활용한 식사일기 예시


 위에서 쌀밥은 탄수화물(1컵), 제육볶음은 지방(2컵), 반찬으로 나온 계란프라이는 단백질(1컵)로 볼 수 있다. 종이컵으로 양을 계산했기에 4컵은 약 720g. 소식좌라면 한 끼를 거하게 먹은 셈이다. 이에 따라 얼마나 피곤한지, 속이 더부룩하지 않은지, 기분이 다운되지 않는지를 문항에 넣어 1~10까지 점수를 매기면 하나하나 적지 않아도 대략적인 기분과 상태를 한 번에 체크할 수 있다.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기타 사항에 운동량을 기록할 수도 있고 식이장애가 있다면 구토는 하지 않았는지 등을 추가적으로 기록하면 된다. 종이컵 식사를 이용한 식사일기인 셈이다.


강박적이지 않게 주의!


 너무 빡빡하게 산다면 골치 아파지는 건 당연하다. 종이컵으로 식사를 한다고 그 숫자에 메이면 나처럼 강박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대충’이다. 대충 마음 편할 정도로 행동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오늘은 대충 이 정도 먹었구나. 대충 기분이 이렇구나. 그 정도도 충분하다. 당신은 이미 자연스럽게 식이조절의 세계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거니까.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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