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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 Mar 16. 2024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못내 나를 사랑하지는 못했다(3)

공포형-회피애착 유형의 연애 에세이

공포형-회피애착 유형의 연애 에세이

나는 빵 자판기가 아니야




공황장애, 불안, 우울 등 다양한 증상을 가진 내가 먹어야 할 약은 대개 아침에 여섯 일곱 알, 저녁에 일곱 여덟 알, 그리고 필요시 약으로 두 알이 있다. 아침에 먹는 약은 빈속에 먹어도 되었고, 저녁에 먹는 약은 몸의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성분이 있기에 자기 전에 먹도록 권유되었다. 그렇게 꼬박꼬박 약을 챙겨먹기를 한 달, 나는 무려 5kg을 증량했다.


한 달만에 저만큼의 몸무게가 붙은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급속도로 찌기 시작한 몸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차처럼 무섭도록 불어나기 시작했다.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게 된 지는 한참, 넉넉하게 맞았던 옷조차도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분명 약을 먹으면서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우울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이 찌게 되면서 더욱이나 깊어지게 되었다.


우울은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내게는 유독 큰 공허함으로 발현한 모양이었다. 공허함을 채우는 데에는 수만가지 방법이 있지만, 나는 '남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방식으로 텅 빈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연스럽게 엄마와 남자친구에게로 향했다.


어느 날 남자친구가 소금빵 맛집이라고 하는 곳에서 빵을 사온 적이 있었다. 엄마와 남자친구, 나 셋이서 둘러앉아 커피와 소금빵을 먹었던 그 기억이 꽤 좋았던 것 같다. 갑자기 유튜브를 보다가 소금빵을 만들어보고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나는 갑자기 집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초심자의 행운은 꽤 먹음직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소금빵을 시작으로 나는 버터가 들어가는 온갖 종류의 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제누와즈, 파운드케이크, 식빵, 모닝빵, 치아바타, 카스테라, 브라우니, 버터쿠키, 컵케이크, 마들렌, 버터바, 거기에다 버터와는 아무 관계 없는 마카롱까지.


빵집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일 빵을 굽느라 바빠진 나 때문에 남자친구는 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 집에 왔어야만 했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나의 데이트는 자연스럽게 집 데이트로 바뀌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친구의 손에는 항상 빵으로 가득찬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다행히도 남자친구의 가족분들께서는 내가 만든 빵을 맛있게 드셔주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덜 달고 식사가 될 수 있는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엄마와 남자친구, 그리고 남자친구의 가족분들은 아침마다 빵과 커피를 드셔야만 했다. 빵을 만드는 내내 단내와 버터냄새, 밀가루냄새에 질린 나는 정작 빵을 한 조각도 먹지 않았다.


빵을 만드는 것은 내 안의 공허함을 퍽 잘 메꾸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언가를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는 보통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주니까. 까다로운 엄마의 입맛에 통과할 때마다 뿌듯함이 차올랐고, 남자친구가 가족분들과 함께 빵을 먹는 인증 사진을 보낼 때마다 기쁨이 차올랐다. 물론 정말 맛있다는 건가 싶은 불안감도 있었지만, 베이킹의 숙련도가 늘어갈수록 그런 불안은 잠잠해졌다.


상담은 한 달에 한 번, 30분 이내로 이루어진다. 상담 중에 우느라 말을 제대로 못하면 30분에서 초과되기도, 울지 않고 잘 대화를 해내면 15분 안으로 끝나기도 한다. 상담을 할 때 나는 내 안의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못 했다. 선생님을 다 믿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처음 병원에 찾아갔을 때부터 나는 내 자신이 참 초라하다고 느꼈는데, 약을 먹으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저 치료 잘 받고 있어요', '저 약 먹고 나서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아요', '저 곧 괜찮아질 거예요', 라고. 확신을 주고 싶었다. 엄마도 남자친구도 나 자신도 아닌, 전문의인 선생님에게 그런 확신을 주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어느 날 상담에서 나는 '매일 빵을 구워서 나눠줄 만큼 저 안정됐어요, 괜찮아진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선생님은 애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좋은 시그널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내게서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환자 기록창으로 짐작되는 페이지에 내용을 입력하기 시작하는데, 내가 빵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 선생님의 타자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빵을 굽는 이유가 뭘까요?"


선생님의 물음은 원초적이었다. 빵을 왜 구울까, 나는 빵을 왜 구울까. 한참 고민하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을 그냥 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요. 빵이라도 만들면 그게 남으니까..."


그랬다.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빵을 굽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싫어서 빵을 굽기 시작한 건 맞다. 몸이라도 움직이면 뿌듯하니까. 뭐라도 만들어지면 좋으니까. 완성이 된 무언가를 보면 성취감이 차오르니까. 시간을 헛되이 죽이고 있지 않다는 증거물이 되니까.


"그럼 빵이 완성되었을 때가 즐거운가요, 빵을 만드는 과정이 즐거운가요?"

"빵이 완성되면요."

"왜 그럴까요?"

"나눠줄 수 있으니까요. 빵이 제대로 안 나오면 그럴 수가 없으니까..."


선생님은 이내 타자를 멈추셨다. 그리고는 한참 정적이 이어졌다. 갑자기 눈에서 툭, 눈물이 떨어졌다. 다급하게 휴지를 뽑아서 눈물을 닦았지만, 이유도 모르게 터진 눈물에 나는 한참이나 휴짓조각에 얼굴을 묻고 끅끅 울었다.




예전에, 상담 초기에 그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나요?'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생일 선물을 챙겨주고, 여행을 다녀오면 기념품을 사다주고, 그냥 평상시에도 커피를 사주고...'


돌이켜보면 나는 평생을 사주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다. 내가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사람들이 내게서 떠날 것 같았으니까. '나는 못생겼고 재미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성격도 밝지 못하니까, 뭐라도 줘야지 나와 친구를 해주지 않을까?' 어째서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 스스로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왔다. 왜일까, 나는 왜 그랬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빵' 이야기를 하다가 저 때의 상담이 기억이 난 거다. 뭐라도 주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무언가를 베풀어야지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이제는 남자친구를 붙잡기 위해서 빵을 굽고 있는 것이었다.


뚱뚱하고 못생겨진 나를 떠날까 봐, 아직 취업도 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빵 굽는 것밖에 없으니까. 정성스럽게 구운 빵을 죄다 남자친구의 손에 들려 집에 보낼 때마다 나는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안도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 적어도 오늘은 남자친구가 나를 버리는 일은 없겠구나. 다음엔 무슨 빵을 구워줘야할까, 내가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빵을 구워야 할까.



"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빵을 굽는 그 마음이 중요한 거 아닐까요?"


선생님은 다정히 내게 말했다. 핀트가 잘못 나가 자판기처럼 빵만 구워대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어린 아이를 대하듯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꼭 무언가를 줘야지만 관계가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

"우리 어렸을 때 무뚝뚝한 아버지가 치킨 사오시고 하는 거, 그게 지금 00님이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말에 나는 다시금 울음을 터트렸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 나한테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내 책상에 홀케이크를 한 박스씩 올려놓았던 사람이었다. 집에 케이크 박스가 이미 두 개나 쌓여 있는데, 매일 같은 케이크 먹으면 질린다는 이유로 갖가지 종류의 케이크를 사오던 사람이었다.



"00님, 관계를 이어나가는 방법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시간이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꽤 중요해요.

남자친구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그 자체만으로도 00님을 사랑할 거예요.

00님이 구워주는 빵 때문이 아니라."



아빠 생각이 났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아빠가 케이크를 사다줬을 때, 나는 아빠에게 한 번도 '같이 먹자'고 한 적이 있었을까? 아빠가 됐다고 했어도, 케이크 한 조각 잘라서 아빠랑 마주보고 앉아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무슨 일은 없었는지, 케이크가 참 맛있다고, 아빠도 한 조각만 먹어봐, 아빠 치즈케이크 좋아하잖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빠가 집을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내 책상에 올려놓았던 그 케이크, 그때라도 한 조각 잘라 아빠와 마주보고 앉았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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