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형-회피애착 유형의 연애 에세이
공황장애, 그리고 선택적 거식증
누군가 내 생사를 걱정해준다. 내가 먹어야 할 약을 챙겨주고, 내가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꼼꼼히 확인해주고, 매일 밤마다 좋은 밤이 되길 바라주고, 매일 아침이 되면 잘 잤느냐고 물어준다. 언제 죽어도 그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독한 나의 삶에, 남자친구는 내 목숨을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됨으로서 나는 어쩌면 더더욱 불행해졌을지도 몰랐다.
공황장애가 시작된 건 정말이지 평범하고도 무탈한 날이었다. 저녁 강의가 끝난 어느 늦은 밤, 귀가를 하던 나는 길바닥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저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몰려드는 오한과 함께 올라오는 구역감에 도로 학교로 돌아가 가장 깨끗한 교직원 화장실을 찾았고, 그대로 구토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채 한참이나 꺽꺽대며 무언가를 토해내려 노력하는 내게서는 눈물과 위액만이 줄줄 흐를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도저히 집에 걸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두 개의 전화번호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엄마, 그리고 남자친구. 내 손이 향한 곳은 엄마였다.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내며, 나는 엄마에게 '속이 좋지 않아. 나 좀 데리러 와 줘, 엄마.'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곧장 차를 끌고 학교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조수석에 앉은 채 나는 미식거리는 속을 달래며 엄마에게 괜찮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죽어도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남자친구에게는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잤다는 말을 끝으로 나의 상황을 공유하지 않았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아 아침을 두유로 때우곤 그대로 오전 강의를 들으러 학교로 가던 길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지하철 앞에서 나는 다시금 구역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지하철에서 걸어나오곤 동네 내과로 향했다. 강의고 뭐고 당장 피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병원에 가서 피를 뽑고, 이런저런 검진을 했다. 피검사 결과는 며칠이나 뒤에 나온다고 했지만 의사는 어제의 갑작스러운 몸상태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내게 조심스럽게 정신건강의학과를 권했다. 어떻게 그녀가 내 상태를 간파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대로 나는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을 걸었다. 그렇게 나는 극심한 불안장애와 우울장애, 그리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올해 본 환자 중 탑 3위 안에 들 정도의 심각한 정도라고 했다. 결과를 듣고 나는 한편으론 안도했다. 나는 아픈 사람이구나, 누군가 결론을 내려준 것이 나로선 참으로 평온한 일이었다.
처음 공황 증상이 있었던 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구토를 하고 엉망이 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대로 며칠을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구역감과 씨름하며 두유로만 생존하던 내가 근 일주일도 되지 않아 3키로 가까이 살이 빠지게 되자, 꽤나 슬림해진 내 몸이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에 들었던 나는 주말이 되자 남자친구를 카페로 불러내었다. 그는 며칠 간 컨디션이 좋지 않아보이는 나의 상태를 간파하고 있었고, 사실은 공황장애를 비롯한 몇 가지 정신질환을 진단받았다는 나의 이야기에 그는 말없이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포근하고 든든한 그 포옹을 깡마른 몸으로 받아내면서 나는 만족했다. 정신병에 걸린 나를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남자친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준 그의 사랑을 받아내는 나는 불완전한 사랑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공황장애가 구역감과 메슥거림으로 오는 타입이었다. 몇 달을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속이 좀 괜찮아져 무어라도 먹으면 몇 십분 뒤에 바로 토해냈다. 본의 아니게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나를 남자친구는 나의 엄마만큼이나 걱정해주었다. 데이트 중 내가 화장실에 조금이라도 오래 가 있으면 괜찮냐며 문자를 남겨놓을 정도로, 나는 남자친구를 제대로 걱정시켰다. 그 점에서 나는 남자친구의 사랑을 제대로 느꼈던 것 같았다. 내가 아프면 남자친구는 이 정도로 나를 챙겨주고 사랑해주는구나.
점차 약을 먹고 상담을 하며 증세가 나아지고, 식이장애 증세가 나아지면서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 있게 되자 나는 조금씩 몸무게가 불기 시작했다. 깡말랐던 몸에 살이 차오르고, 원래 체중을 넘어서 더 살이 붙게 되는 지경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내 불안장애는 더욱 심해졌다. 전에 없게 살이 찐 나를 남자친구가 더 이상 사랑해주지 않을까봐였다. 데이트 횟수를 줄이고, 몸선을 가리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데이트를 할 때도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두유를 챙겨가 밥 대신 먹었다. 하지만 나는 풍선처럼 몸이 부풀었다. 말랐던 때에 맞았던 옷이 전혀 맞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는 컸던 옷이 꽉 맞게 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