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눅눅 Mar 28. 2024

interlude.

공포형-회피애착 유형의 연애 에세이

"너에게 흠이 되니, 집안 얘기는 절대로 남에게 하지 마라."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속앓이를 하면서도 그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일은 꼬여만 갔습니다.

상처 위에 한 스푼씩 덮기 시작한 흙이었습니다.

점차 쌓여가는 흙더미는 끝끝내 공사장의 커다란 흙무덤처럼 기어코 쌓여갔습니다.


상담을 진행해주시던 의사 선생님은 상처를 들여다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들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되도록 놓아주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난 이후, 근 4년 동안 엄마는 집에서 아빠의 모든 물건을 내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엄마를 붙잡으며 이것만은 남겨달라고 했던 것은 아빠의 서재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엄마는 깨끗이 지워내고 말았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아직 저는 아빠가 어째서 집을 나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쉬이 아빠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삶에서 아빠가 지워지는 것이 너무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빠임에도, 엄마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사람인데도,

제가 기억하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흘려보내야 할 것들은 태산인데, 저는 그것들을 전부 끌어안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철근이 부러지고 시멘트가 부서져 내리고, 돌이 으깨지고 흙바닥에서는 먼지가 날립니다.

온갖 흙과 돌, 시멘트와 철근 조각들이 켜켜이 쌓인 흙더미.

제 마음은 딱, 공사장입니다.




하염없이 이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심장이 미어 터지듯 울고 불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마음의 파도가 거센 폭풍에 출렁였습니다.

높게 지은 방파제를 너머, 검푸른 바닷물이 온 마을을 뒤덮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폭풍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은 상담 선생님도, 정신과 약물 치료도, 남자친구도 아닌,

저에게 있다는 것을.



2024년 3월 초, 무작정 글을 써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작가 신청 버튼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 많은 이들에게 제 글이 보여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화면 너머 당신의 마음과 하나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내어, 그리고 또 다짐하며 글을 하나 둘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개의 글이 담긴 한 챕터가 끝났습니다.

일곱 스푼, 저는 여러분들 덕분에 마음의 흙무덤에서 일곱 스푼을 퍼내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재미없고 고루하며 우중충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힘든 하루에 저의 이야기가 더욱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슬프게도, 살다 보면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날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면 정신과 약이, 상담이, 연인이, 친구들이 마음에 평온을 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220v와 110v 코드가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노력이 나에게 닿지 않는 순간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제 글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한 스푼이라도.

덜어내드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작은 소망을 품에 안고, 우리에게 해피엔딩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댓글과 응원을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오늘 하루가 평안하셨기를 바랍니다.



다음 챕터 - 나의 아빠는 왜 집을 나갔을까 - 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7화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못내 나를 사랑하지는 못했다(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