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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 Mar 30. 2024

나의 아빠는 왜 집을 나갔을까(1)

나의 영웅, 나의 아빠

나의 기억 속 아빠는, 그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엄마와 내가 물에 빠지면 동시에 두 사람을 구할 정도로 강했으며,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싸우고 있으면 나서서 제지해주는 영웅같은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 어느새 친해진 동네 할아버지들과 막걸리를 주고받을 정도로 정이 많았고, 눈이 오면 경비원 아저씨들과 함께 눈삽을 들고 하루 종일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눈을 치울만큼 배려깊은 사람이었다.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은 수도 없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심지어 아빠가 집을 나간 지 사오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빠는 나에게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부모가 된다면 꼭 아빠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아빠가 나에게 해줬던 것을 나의 아이에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항상 생각했고 다짐했다. 아빠가 나를 혼낼 때마다 미우면서도 동시에 감사했고, 저녁에 술 한 잔 걸친 아빠가 에이포 종이에 연필로 설명해주는 삶의 이치 같은 것들을 다이어리에 꽂아둘 정도로 아빠는 나에게 선생님 그 자체였다.


아빠는 나에게 영웅이었다. 현관문을 닫지 않고 자도 불안하지 않을 정도로 아빠와 함께 있으면 무섭지 않았으니까. 현관 걸쇠 네 개를 걸어잠궈도 불안한 지금과는 달리, 그 때에는 정말로 단 한 번도 자기 전에 현관문 걱정을 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랬던 아빠가 집을 나갔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일주일이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잠깐 여행이라도 간 것만 같았다. 안일하게 굴었다. 곧 아빠가 돌아올거라는 엄마의 말만 믿고, 아빠에게 문자 한 번 보내지 않았다. 지금 어디에 있냐고, 왜 추운데 집을 나갔냐고. 혹시 많이 힘든 거냐고, 돌아와 한 번만 이야기해보자고. 만약 그날 내가 아빠에게 전화를 했으면 지금 무언가라도 조금 달라졌을까, 아니, 모르겠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빠는 받지 않았다. 나는 환청처럼, 아빠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를 매일 들었다. 잘 때 조차도, 침대에 누웠다가도 나는 허공에 울리는 도어락 소리에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현관은 잠잠했다.


한 달이 지났다. 엄마에게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왔다. 나는 매일 밤 엄마의 머리맡에 앉아서 엄마가 잠에 들 때까지 엄마를 토닥여주었다. 엄마는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 악몽에 갇혀 소리를 웅얼웅얼 지르는 엄마를 깨워주기 위해 나는 낮이고 밤이고 안방 옆에 붙어 있었다.


세 달이 지났다. 계절이 바뀌었다. 하나 둘 꽃이 피었고,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집근처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엄마를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엄마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자신을 자책하다가, 아빠를 원망했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마의 마음은 뒤바뀌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엄마가 너무 미워서 나조차도 집에서 도망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버려진 것에 대해 매일같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자조했다. 나는 가만히 엄마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일 년이 지났다. 다시 추운 겨울이 되었다.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집을 나간 이유만이라도 이야기해 달라고. 일 년동안 나의 전화도 나의 문자에도 그 어떤 답을 주지 않았던 아빠는, 새해에 보낸 나의 그 문자에 드디어 답을 보내주었다.


[ 아빠가 미안하다 ]


핸드폰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아빠가 나간 후로 아마 처음으로 울었던 것 같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온 힘을 끌어모아 애써 괜찮은척 했던 내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터졌고 비명과 같은 울음이 새어나갔다. 엄마는 깜짝 놀라 내 방으로 달려왔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이며, 얼굴을 벌겋게 달군 채로 한참을 울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핸드폰을 끈 채로 며칠을 누워만 있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침대에 파묻혀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빠가 완벽하게 내 곁을 떠났다.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아빠는 나를 버렸다.


다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모든 것들이 잿빛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허기도 슬픔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의 존재마저도 귀찮았다. 엄마가 악몽을 꾸든 말든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아빠의 서재에 들어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다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빠 서재에서는 아빠 냄새가 났다. 아빠가 쓰던 스킨 냄새. 아빠 서재 구석에는 내 책상이 달려 있었다. 내 책상 자리에 앉으면 책상에 앉은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거짓말처럼 매일같이,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이미 나를 떠나고 없는데, 내 눈에는 자꾸만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 글을 아주 잘 써서 여행작가가 되었으면 한다고 늘상 내게 말하기도 했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나서 나는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쓸 수 없었다. 일 년 동안은 엄마가 죽지 않도록 엄마를 돌봐야 했고, 일년을 넘기고부터는 숨도 쉬고 싶지 않을 만큼 삶이 무의미해졌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휴학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노트북을 찾았다. 거의 일 년 만이었다. 노트북 위로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 경첩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다 연 순간, 나는 그대로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돈이 있었다. 백 장 남짓한 만원 권 더미와, 그리고 포스트잇 한 장이.



[ 아빠가 미안하다 ]



포스트잇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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