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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 Jun 02. 2024

나의 아빠는 왜 집을 나갔을까(2)

회피

지난 4월을 끝으로 약 두 달간, 브런치를 단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계속 글을 쓰기에 내 모든 것들이 너무 헤져 버렸다. 내게 이 글을 쓴다는 것은 상처를 마구 헤집어놓고, 언젠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계속 진물이 나도록 놔두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저번 이야기는 백만 원, 노트북 사이에 끼워져 있던 쪽지와 함께 발견된 백만 원에서 끝났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한동안 내 책상과 서재 바닥에 만원 권 백 장을, 처음 발견했을 때 늘어뜨린 그대로 놔두었다. 그리곤 며칠 간 서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돈을 어떻게 치웠는지, 누가 치웠는지,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그 일의 마지막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 늦잠을 자길 좋아했던 내게 아빠가 나를 깨우기 위해 불러주던 노래가 있었다. 당장 며칠 전, 그 노래의 음정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아마 이 주 전, 나는 아빠가 종종 가정통신문에 적어줬던 아빠의 서명을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끝끝내 아마도 한 달 전, 나는 더 이상 백화점 향수 코너에 가서도 아빠가 쓰던 향수의 냄새를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벌써 6년이었다. 6년이 지났다. 아빠가 나를 떠나간 지.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갔고, 나는 아빠에 대한 것들을 하나 둘 씩, 아주 깨끗하게 잊어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어쩌면 시간보다 더 무자비해서, 정말 한동안 까마득하게 정체조차 떠오르지 않다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아, 그게 뭐였지. 수면 위로 팍 떠오른 생각 끝에 결국엔 내가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식의 흐름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나는 아빠를 잊어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아빠의 목소리마저, 생김새마저, 아빠의 이름마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당장 아빠가 무슨 반찬을 좋아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언젠가 맞이하게 될 당연한 결과일테다. 



며칠 전 남자친구가 내게 노트북을 사주겠다고 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면서, 부담 갖지 말고 선물로 받아달라고 했었다.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노트북이 필요 없다는 대답만 하다가, 결국에는 끝끝내 나조차도 모르던 거절의 이유를 내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내 평생 노트북은, 항상 아빠가 알아봐주고, 아빠가 사줬던 거였어."

"......"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니까, 아빠는 항상... 작가라면 좋은 노트북이 꼭 있어야 한다고..."


눈물이 났다. 그 노트북 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걸 비롯해서 이제 내 삶의 모든 것들에 아빠가 더 이상 묻어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울었다. 인정해야 했는데,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는데.


오랜만에 핸드폰에서 아빠 번호를 찾았다. 아빠 전화번호가 가물가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찾으면, 나도 모르게 아빠에게 전화를 걸까봐 다시 핸드폰을 껐다. 아빠는 내 전화를 반가워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을 나는 정말 받아들여야 했다.



받아들이기, 누군가가 떠난 것을 받아들이기. 온 마음을 다해, 그래, 나를 떠났구나. 이유가 어떠하든 당신은 나를 떠났다는 것을 이제는 내가 받아들일 차례구나. 온전히 받아들여서, 더 이상 떼를 쓰거나 붙잡지 않고,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몇 년만 기다리면 나는 곧 서른이 된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때를 문득 그려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식장에 들어설 때, 나는 혼자 들어가게 되겠지. 당당하게, 울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까. 혼주석에 혼자 앉은 엄마를 보면서, 우리의 삶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이제 혼자가 될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그렇게 아빠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는 건지.


그렇게 하나 둘, 시간이 지나면서, 당장 내 앞에 닥쳐오지 않을 일들조차도 미리 꾸역꾸역 생각하면서 나는. 여전히 언젠가 아빠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오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오늘도 또 한 번 도대체 아물지를 않는 상처를 칼로 쑤셔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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